한국만 홀로 탄소배출권 거래?…주변국 동참없인 효과없다

정부가 내년 시행 예정인 탄소배출권 거래제도와 관련해,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배출권 총량을 늘리는 등 보완카드를 내놨다. 하지만 정부의 보완카드는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 배출권 거래제도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탄소배출량을 감축하기 위한 제도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과의 공조, 합리적인 배출권 분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래픽=유정수 디자이너

◇과징금이 문제가 아니다…문제는 낙관=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도입을 두고 정부와 업계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이유는 배출권 거래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룬다는, 낙관적인 전제 아래 제도가 설계됐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제도 시행이후 발생하는 기업 부담이 1조원에서 8조5000억원까지 차이나는 것도 낙관적인 정부와 비관적인 기업들의 시각차에서 기인한 셈이다.

할당량을 넘겨 탄소를 배출한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의 배출권을 사오는 게 제도의 골자이지만, 현실에선 공급권을 팔려는 기업과 사려는 기업 사이에 불균형이 생긴다는 말이다.


업계와 유관기관 등에 따르면 탄소배출 기준 상위 50개 사업장이 제조업 전체 탄소배출량의 48%를, 상위 25개 사업장은 39%의 탄소를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탄소배출권 거래제도에 참여하는 기업 400여곳 가운데 극소수, 특정 산업의 기업만이 배출권을 사야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나머지 기업들은 배출권을 확보하는 대신 탄소배출저감 설비투자를 축소할 수도 있고, 불확실한 탄소거래 배출 시장을 감안하면 배출권은 시장에 내놓기 보단 사내에 유보하거나 계열사끼리 거래할 가능성이 높다.

업계의 한 연구원은 "탄소배출권 거래시장도 거래량이 적어 유명무실해진 미니금, 돈육 선물시장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며 "제조업경기에 따라 활황 시 배출권가격이 폭등하거나, 불황 시 폭락하는 부작용도 예상된다"고 밝혔다.

기업들이 과거 해오던 탄소배출 저감노력과 탄소감축 여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BAU(온실가스 배출전망치)와 업종별 감축할당량을 설정한 것도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실례로 철강업의 경우 쇳물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연료가 생산비용의 일부이기 때문에 연료효율극대화 연구를 진행해 왔다. 그 결과 현재 한계치에 가까울 정도로 연료 효율을 끌어올렸고, 동시에 탄소배출량도 줄어들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상황에서 다른 업종과 동일하게 탄소감축 목표를 제시할 경우 철강기업은 탄소배출권을 사야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국내 정유화학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유나 철강, 화학 업계의 경우 과거에도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노력을 계속해왔다"며 "배출량을 능력껏 줄인 상태서 다시 배출량을 줄이라는 요구는 '마른 수건을 짜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장현숙 한국무역협회 연구위원은 "적은 비용으로 탄소를 가장 많이 줄일 수 있는 산업이 감축할당을 많이 가져가야 한다"며 "감축할당을 정하는 과정이나 구체적인 할당량 공개 없이 제도를 추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만 치고 나갈 문제 아냐…주변국 발맞춰야= 탄소배출감축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범국가적으로 공동 대응해야하는 문제이니만큼 탄소배출량이 많은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과 공조해 제도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 약화를 막기 위해 국가 단위가 아닌, 산업별로 탄소배출 목표를 공유하고 동등한 조건 아래 규제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공공정책연구실장은 "중국이 탄소배출량을 줄이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를 시행할 경우 환경에 대한 기여도가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변국의 동향을 살피고, 규제보다는 탄소감출 기술에 대한 R&D(연구개발)를 독려하는 게 효과적"이라며 "과소측정된 BAU 역시 감축 주체인 산업계가 공감할 수 있도록 재산정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탄소감축 할당량 배분 과정에 산업계가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기업이 스스로 탄소배출량 감축 현황을 설명하고 감축여력을 충분히 고려해 정책을 운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에 앞서 탄소배출권 거래제도를 시행 중인 EU(유럽연합)의 사례처럼 시행 전 업계와 충분히 논의하고, 감축할당량 배분을 투명하게 해 제도시행에 대한 반발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