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대담②] 로봇의 발전 위해선 기초부터 집중해야



(왼쪽부터) 데니스 홍교수, 오준호 교수, 장윤옥 편집장, 노경식 상무

▶[로봇 대담①] 로봇 개발에 실패를 '許'하라'에서 이어집니다.


사회 꾸준한 투자와 경험의 축적이 중요하다는 말씀이군요. 그렇다고 해도 모든 로봇 분야에 다 투자할 수는 없고, 뭔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텐데 우리는 어떤 방향의 로봇 기술을 개발해야 할까요.


오준호교수(이하 오) 휴머노이드 로봇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만 한다거나 시장 가치도 없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한다는 오해가 있거든요. 휴머노이드 로봇은 가시성이 있어서 로봇 하면 휴머노이드 로봇을 먼저 떠올리고, 투자도 이 분야에 집중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동안 제가 받은 연구비가 6년 동안 36억원인데 다른 나라에서 이 이야기를 들으면 깜짝 놀랍니다. 우리나라가 로봇 강국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휴보’를 제외하면 별다른 성과도 없는 실정이죠. 우리 로봇 개발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아쉽습니다.


노경식 상무(이하 노)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로 확보한 기술들을 기존의 제품에 적용하면 기존 제품의 성능과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고, 차별된 제품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휴머노이드 로봇에 들어가는 힘을 제어하는 기술을 의료장비에서 작은 힘으로 큰 중량의 의료 기기 작동에 적용해 성과를 거뒀습니다. 또 차세대 TV용 UI를 위해 음원인식 기술을 매우 유용하게 활용하기도 했지요. 이 밖에 청소 로봇의 주행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등 다양한 곳에 적용, 큰 효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사회 우리 로봇 기술은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려면 각 분야에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그러기 위해 풀어야 할 문제는 또 무엇일까요.

오 상업화와 관계없는 정부의 꾸준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는 학생들이 로봇을 좋아하는 등 기초 환경 측면에서는 긍정 요소가 많습니다. 이를 활용하려면 자유롭게 로봇을 연구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15년 전에 데니스 홍 교수가 만든 비정형 로봇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정형화돼 있지 않은 로봇이라는 제목으로는 과제를 받을 수 없는 거예요. 어떤 로봇인지 정확히 명시해야 하는 거죠.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창조라는 시도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는데 당장 돈 벌 수 있는 것을 만들라고 하니까 차별화되지 않은 작품만 나옵니다. 로봇은 당장 몇 년 안에 큰 돈을 벌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더 긴 호흡으로 기초 연구를 지원해야 합니다.

데니스 홍 교수/UCLA 기계공학과 교수, 퍼듀대 기계공학과 박사, 버지니아텍 기계공학과 교수, UCLA 로봇매커니즘 연구소장

데니스 홍 교수(이하 홍) 맞습니다. 정부는 장기 관점에서 기초과학이나 기초기술에 투자해야 합니다. 기초가 쌓이면 눈에 보이는 것은 당장 없지만 나중에 진짜 필요할 때 뭔가 만들어 낼 수 있는 토양이 됩니다. 한국에서 정부 지원을 받는 프로젝트는 당장 먹을거리가 되는 주제입니다. 한국 교수들은 당장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고민이나 압박을 많이 받죠.
하지만 미국은 어떻게 하면 새로운 것을 할지 고민합니다. 그리고 원천기술 개발을 지원하죠.한국은 당장 성과를 내기 위해 어설프게 탑을 쌓다가 쓰러지는데 미국은 당장 보여 주는 화려한 것은 없지만 차근차근 기초가 쌓입니다. 미국이 앞서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 꾸준한 기술개발의 중요성을 보여 주는 좋은 예가 미국의 우주탐사 사업입니다. 과거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하자 깜짝 놀란 미국이 서둘러 우주 개발에 나서고, 이듬해에 인공위성을 발사합니다. 이후 유인 우주선, 달 탐사까지 소련과 엄청난 경쟁을 했는데 이건 기초 기술이 축적돼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정치권에서 아무리 난리를 쳐도 기술개발은 하루아침에 안 되거든요. 우리나라는 새로운 것을 한다며 여기저기서 요소 기술들을 사옵니다. 당장은 성과를 내는 것 같지만 우리가 축적하는 내실은 거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 로봇 연구개발의 방향이 인기 있는 테마와 단기간의 성과에만 편중되어 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국가와 산업계를 중심으로 좀 더 지속성 있게 단계별 장기 목표를 세우고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단순히 주어진 목표 수치를 달성했느냐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연구 방법과 방향 전체를 토의하고 새로운 연구 방향을 조언하는 방식으로 관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사용자의 수요를 반영한 실질 기술 개발보다 논문에 이용할 만한 연구에 초점을 맞추려는 경향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오 좋은 지적입니다. 요즘 논문 위주 연구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은데 로봇 분야도 그렇습니다. 창업이나 새로운 제품 개발로 영향력 있는 성과를 내는 것보다 논문을 쓰는 것이 오히려 쉽거든요. 논문 쓰기는 개선만 약간 해도 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각 영역에서 창의력을 끌어낼 수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줘야 합니다.

노 로봇 기술은 실패를 하더라도 여러 번 시도를 해 본 사람과 처음 하는 사람 사이에 격차가 큽니다. 그래서 예전에 시도한 어떤 데이터가 있으면 도움이 많이 되지요. 실패하더라도 왜 실패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떤 부분에 어려움을 겪었는지 하는 내용이 자료(DB)로 남아 있으면 처음부터 연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몇 년 전 어디에서 비슷한 연구를 한 것 같아 자료를 찾아보면 데이터가 없고, 어렵게 수소문해서 사람을 찾으면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어서 애를 먹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홍 기술개발이나 연구는 처음 시작할 때 성공할지, 가능한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처음 계획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요. 미국은 이런 경우 실패라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왜 안 된 것인지 배울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실패에서 배우는 것이죠. 우리도 실패에서 새로운 발전을 끌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한국은 학생들이 로봇에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세계 상황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죠. 이렇게 많은 관심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깝습니다. 미국의 경우 학생들을 지원할 수 있는 장학 제도가 많이 있습니다. 한국도 로봇에 관심과 열정이 있는 젊은이들을 지원하는 장학 제도를 만들어 제공한다면 한국 로봇 연구의 미래도 어두운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날짜 및 장소=2014년 8월 4일 마이크임펙트 회의실
대담= 노경식 삼성전자 글로벌기술센터 상무, 데니스 홍 미국 UCLA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오준호 한국과학기술원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 소장(가나다순), 장윤옥 테크앤비욘드 편집장(사회)
정리=도강호기자 사진=성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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