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복싱' 김예지 "4년 기다린 기회, 왼손으로 잡겠다"

국내 라이트플라이급(51kg 이하) 챔피언인 김예지의 경기모습/ 사진제공=김예지

사각의 링 위에 쏟아지는 땀, 끊임없이 치고 빠지는 스텝, 쉴 새 없이 날라오는 주먹. 복싱은 거칠다. 그리고 힘들다. 여자에겐 더욱 그렇다. 비인기종목인 탓에 훈련은 더 고되고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대회는 적다. '여자 복싱'은 2010년 광저우대회 때 비로소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그래서 여자복싱 라이트플라이급(51kg 이하) 국가대표 김예지(22·한체대)에게 이번 아시안게임은 특별하다. 처음 출전하는 메이저대회기 때문. 한창 훈련에 매진 중인 그를 지난 11일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만났다.


◇ '이시영 상대'아닌 당당한 국가대표로…=김예지는 배우 이시영의 상대선수로 먼저 주목받았다. 복싱선수로 인천시청에 입단한 이시영이 그와 같은 체급이기 때문. 언론은 '이시영이 김예지를 꺾을 가능성'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시영이 아시안게임에 불참하자 사람들의 관심도 사그라들었다.

사실 김예지는 라이트플라이급 국내랭킹 1위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전국체전 우승을 휩쓸었다. 그럼에도 여자복싱을 향한 시선은 많지 않다. 지원이 부족한 것은 당연하다. 연습복이나 단복, 스폰서 지원 등 모든 부분에서 다른 종목에 비해 열악하다.

남자와는 다른 '여자' 복싱만의 고충도 있다. 여자선수가 거의 없다보니 남자 선수들에 맞춰 훈련하는 경우가 다수. 중학생 때는 3년 내내 아무 대회도 출전하지 못하고 훈련만 했다. 중학생 여자 복싱 선수가 나갈 수 있는 대회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도 남자 중학생이나 복싱을 배운지 얼마 안 된 남자 고등학생과 연습 경기를 뛰었다.


"여자 복싱이 더 알려지기 전이라 시합을 안뛰고 훈련만했어요. 한마디로 말하면 노동했죠, 노동. 매일 죽어라 남자애들이랑 같이 뛰었어요"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다. 언제든 얼굴을 다칠 수 있는 위험도 있다.

"저도 맞으면 아파요. 그런데 링에 올라가면 해야죠. 들어가다가 걸려서 맞더라도 일단 부딪치는 거에요. 어차피 복싱은 맞으려고 한거니까요. 맞는 게 두려우면 처음부터 복싱을 하지 말았어야 돼요."

김예지는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따겠다는 각오다/ 사진제공=김예지

◇ "왼손 펀치로 세계선수들과 맞설 것"=그럼에도 그가 복싱을 계속하는 것은 링 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함 때문이다. 그 짜릿함은 김예지를 잡아주는 힘이기도 하다.

그는 생애 처음 나간 대회를 잊을 수 없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참가한 연맹회장배 대회에서 2라운드만에 TKO승을 거뒀다. 당시 48kg급 챔피언이었던 허연주를 상대로 거둔 승리였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 제가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경기가 끝난 뒤 심판이 잡은 제 손이 올라가는데 정말 짜릿하더라고요. 물론 딸의 첫 시합을 본 어머니는 많이 우셨지만…" 국가대표 김예지의 첫 시작이었다.

그는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루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라고 느낀 적이 많은 것도 사실. 여자 복싱에서 세계 정상급이 되기 위해선 중국, 인도, 카자흐스탄, 북한 등의 벽을 넘어야 한다. 지난 2년 동안 전국체전을 중심으로 훈련이 진행되다보니 세계 선수들을 만날 기회를 놓쳤다.

"확실히 세계선수들의 클래스는 다르더라고요. 깡도 있고, 파워도 있고. 자신감도 달라요. 국내에서만 많이 출전하다보니 답답한 것도 있죠."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시간, 그는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타고난 복싱 센스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그는 파워보다 스피드로 승부하는 아웃복서다. 타이밍을 아는 것이 곧 승부의 분수령이다.

"복싱에 대한 센스라고 할까요? 언제 치고 빠져야 하는지 아는 감각은 제가 봐도 좋은 것 같아요. 상대 입장에선 얄밉기도 할 거에요" 웃으며 말하는 그에게 자신감이 비쳤다.

왼손으로 나가는 스트레이트도 주특기다. 상대가 들어올 때 힘을 실어 순간적으로 쳐내는 스트레이트가 발군이다. 국내엔 거의 없는 왼손잡이(사우스포)의 강점을 십분 살린 것.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그는 자신의 왼손에 기대를 건다.

"링 위에서 심판이 제 손을 들어올리는 짜릿함을 다시 느끼고 싶어요. 왼손으로 상대에게 카운터 펀치 '한 방' 먹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