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 장자'의 위기 앞에… 탄원서 이유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지난 14일 오후 항소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휠체어를 이용해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 들어서고 있다.이 회장은 지난해 8월 신장 이식 수술을 받은 뒤 건강이 나빠져 구치소와 병원을 오가며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건희 삼성 회장의 부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 등 범 삼성가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선처해달라고 공동 명의로 탄원서를 제출했다. '집안 장자'인 이재현 회장이 구속과 재판 과정에서 건강 악화가 심각해진 상황이어서 가족들이 힘을 보태야 한다는 의지로 보인다.

내달 4일 항소심 선고공판을 앞둔 이 회장은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던 지난해 8월 신장이식 수술까지 받았다.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구속집행정지 연장 신청을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수감된 이 회장은 수감으로 인한 신장이식 후유증까지 겹쳐 급격히 건강이 악화돼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다.


2년간 이재현 회장의 부친인 이맹희 씨와 상속 소송을 벌이면서 CJ 오너 일가와 대립각을 세웠던 삼성가도 '장자의 치명적인 건강 악화'에는 등을 돌리지 않았다. 특히 1심 소송에서 이건희 회장과 대립각을 세우며 소송에 참여했던 이숙희 씨도 이번 탄원에 참여하는 등 이병철 선대회장의 자녀들이 장자인 이재현 회장 구명에 모두 참여했다. 이는 단순히 이재현 회장의 구명을 넘어서 범 삼성가 화해의 신호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받는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건희 삼성 회장의 부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등은 지난 19일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권기훈)에 탄원서를 냈다.

이들과 함께 이건희 회장의 둘째형 고 창희 씨 부인 이영자씨와 이병철 선대회장의 차녀 숙희씨, 삼녀 순희씨도 탄원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이재현 회장이 건강문제로 수감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가족들로 적어도 이 회장 탄원만큼은 범 삼성가 가족들간에 이견의 여지가 없음을 보여준다.

삼성가의 상속재산 소송은 2012년 2월 이재현 회장의 부친이자 이병철 선대회장의 장남인 이맹희 씨가 "아버지가 생전에 제3자 명의로 신탁한 재산을 이건희 삼성회장이 다른 상속인에게 알리지 않고 단독 명의로 변경했다"며 이건희 회장에게 7100억원의 상속재산을 나눠달라고 주장하며 촉발됐다.

이후 이건희 회장 누나 숙희씨와 형 창희씨의 며느리까지 이 소송에 합류하면서 범 삼성가의 다툼 양상으로 번졌다. 소송가액도 4조원까지 늘었다. 숙희씨와 창희씨 며느리는 이후 항소를 포기했고 서울고법에서 지난 2월 원고인 이맹희 씨 패소 판결을 내리며 소송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맹희씨와 이건희 회장의 갈등이 불거졌고 그 불똥이 소송과 전혀 관련 없다고 주장하는 이재현 회장에게까지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이재현 회장의 항소심 선고 공판을 앞두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직계 가족은 물론 상속 소송에서 대립했던 범 삼성가 가족들까지 이재현 회장의 구명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하며 극적인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다.

이 회장은 1990년대 중반 조성한 수천억원대 비자금을 운용하면서 조세포탈과 횡령·배임 등 혐의로 지난해 7월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심에서 검찰은 징역 5년과 벌금 1100억원을 구형했다.

한편 CJ그룹은 범삼성가의 탄원서 제출에 대해 가족간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며 환영했다. CJ 고위 관계자는 "이재현 회장의 건강상태가 극도로 좋지 않다는 것은 오랜 기간 그를 지켜본 범 삼성가 가족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며 "가족 입장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CJ 직원으로서도 감사한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번 탄원서 제출을 계기로 범 삼성가가 그간의 앙금을 털어내고 각자의 위치에서 우리 경제에 힘을 보태는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기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