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2주 내 우크라 수도 키예프 장악 가능"

나토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개입 증거로 공개한 사진. 21일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러시아제 자주포를 실은 것으로 추정되는 수송차량들의 행렬이 촬영됐다. 이 지역은 친 러시아계 반군이 장악하고 있어 정부군 진입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사진=디지털글로브,나토

제2차 세계대전 발발 75주년 기념식이 폴란드에서 열린 1일(현지시간) 유럽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러시아의 잇따른 도발로 긴장에 휩싸였다. 지난 3월 크림반도를 기습적으로 병합한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의 반정부군을 지원하며 내전을 조장하는 러시아의 행보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다.

러시아가 친 러시아계 주민 보호를 목적으로 크림반도를 병합했던 것은 독일이 1938년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체코슬로바키아 서부 지역을 강제 병합했던 것과 비교된다. 주변국을 병합하면서도 침공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도 나치 독일과 공통적 행태로 꼽힌다.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 사태 초기에 미온적 대응을 보이면서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의 강력한 위협으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전면전 양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이날 뉴스위크가 이탈리아 일간 라 리푸블리카를 인용,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최근 호세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위원장과 전화통화에서 "내가 원할 경우 2주 내에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장악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이에 더해 발레리 겔레테이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러시아가 비공식 채널을 통해 (우크라이나가) 저항을 계속하면 전술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럽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보지 못했던 거대한 전쟁의 문앞까지 다가왔다"며 "희생자가 수백, 수천 명이 아니라 수만 명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유엔은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정부군과 반군간 충돌로 최소 2600여명의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러시아의 도발이 수위를 높여가고 있지만 서방은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태다. 미국은 그간 러시아에 강력한 경제제재 조치를 취해왔으나 우크라이나 사태가 미국과 러시아간 대리전 양상으로 비화되는 것을 우려해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 등 적극적인 개입을 꺼리고 있다. EU는 러시아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회원국 간 의견 대립으로 사태 대응에 분열된 모습을 보이며 강력한 행동에 나서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방이 주저하는 동안 러시아의 힘을 등에 업은 것으로 알려진 친 러시아계 반군은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 반군은 지난달 정부군이 힘들여 탈환했던 루간스크 공항을 재탈환했고 도네츠크에서도 정부군을 몰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서방은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대응에 나서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는 동유럽에 배치될 4000명 규모의 신속대응군을 창설할 계획이라고 이날 영국 가디언이 보도했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은 오는 4~5일 영국 웨일스에서 개최될 회원국 정상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준비 태세 실행 계획'을 승인할 예정이다. 이는 러시아의 잠재적 위협에 대비한 군사적 대응이다. EU는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강화하기 위해 러시아 국채를 EU 역내에서 투자자들이 매입할 수 없도록 하는 제재 방안도 검토 중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오는 3일 러시아의 '앞마당'인 에스토니아를 찾아 발트3국(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정상들과 회담하고, 4~5일 이틀간은 영국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에서 국방비 증액과 같은 집단방위태세를 촉구할 예정이라고 영국 더타임스 등은 전했다.

디디에 부르칼테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의장은 이날 스위스 국영TV에 출연해 "현 시점에서 매우 어두운 시나리오가 상상된다"며 "매우 민감한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