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긴축' 시리자 총선 압승...유로존 분열 가속화?

알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 대표./사진=블룸버그

25일(현지시간) 치른 그리스 총선에서 예상대로 구제금융 조건인 재정긴축에 반대하는 시리자(급진좌파연합)가 압승했다. 시리자는 과반의석(151석) 확보에 실패했지만 연립정부를 구성해 독일이 주도하는 유럽의 긴축 노선에 저항할 전망이다. 이에 따른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정치적 분열이 새로운 위기를 초래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26일 그리스 일간 카티메리니에 따르면 개표율 99.83%인 오전 10시 현재 시리자는 36.34%의 득표율로 가장 많은 149석을 차지하게 됐다. 여당인 신민주당은 27.81%로 76을 얻는 데 그쳤다.


이로써 시리자는 전체 300석 가운데 과반의석 151석에 2석 못 미치는 의석을 확보했다. 단독 정부 구성에는 실패했지만 신민주당을 큰 표 차이로 따돌려 2010년 구제금융 체제 도입 이후 지속된 고통스런 긴축에 등 돌린 민심이 확인됐다. 그리스에서 신민주당이나 사회당(PASOK)이 아닌 정당이 정권을 잡은 것은 40년 만에 처음이다. PASOK는 이번 선거에서 득표율로 7위에 그쳤다.

시리자의 연립정부 파트너로는 민족주의 정당으로 반긴축 노선을 공유하고 있는 그리스독립당이 유력하다. 그리스독립당은 이번 선거에서 13석을 확보했다. 두 정당은 이날 연정 구성에 잠정적 합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40세로 유로존 최초의 반긴축 노선 총리가 되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 대표는 간밤 총선 승리 연설에서 재정긴축에 반대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그는 "그리스가 굴욕적이고 비참한 지난 5년을 뒤로 하고 새 페이지를 넘기게 됐다"며 "긴축의 악순환은 끝났다"고 구제금융 체제에 종언을 고했다.

치프라스 대표는 금융시장이 우려하는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그렉시트)이나 일방적 채무상환 중단 가능성은 일축했다. 다만 그는 구제금융 재협상을 통해 지원 조건인 긴축 프로그램의 수위를 낮추고 부채 탕감 규모를 최대한 늘리려 한다. 치프라스 대표는 그리스의 채무 부담이 더 이상 떠받칠 수 없는 수준이라며 부채를 3분의 1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리스의 부채가 정말 과도한 수준인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며 다른 유로존 국가들은 이에 대해 더 회의적이라고 전했다. 그리스를 상대로 한 추가 채무조정 협상이 자칫 유로존의 정치적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분열이 심화하면 그렉시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지난해 9월 말 현재 그리스의 총 부채는 3170억유로(약 381조9818억원)로 GDP(국내총생산)의 175%에 이른다. GDP 대비 부채 비율로만 보면 세계에서 일본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그리스의 채무 상환 부담이 GDP 대비 부채 비율만큼 크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우선 그리스 전체 부채 가운데 142억유로, 약 45%는 유럽 구제기금인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통해 빌린 돈이다.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고 평균 만기가 30년이 넘는다. 게다가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2012년 그리스가 이자를 내지 않아도 되는 10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그리스는 2010년 재정위기가 터진 뒤 이미 두 차례에 걸쳐 부채를 탕감 받았다. 유로존은 그리스가 구제금융 조건을 잘 이행하면 부채를 더 탕감해주기로 했다.

채무조정 덕분에 그리스의 채무 관리 부담은 크게 줄었다. 그리스 채무의 평균 만기는 16.5년으로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2배나 된다. 역시 구제금융 지원을 받은 포르투갈(11년)과 아일랜드(12.5년)보다 더 좋은 조건이다.

이에 따라 그리스의 연간 원리금 상환 부담도 지속적으로 경감됐다. 유럽 싱크탱크 브뤼겔의 졸트 다르바스 연구원은 지난해 그리스의 명목이자 지출액이 GDP의 4.3%로 이탈리아나 포르투갈에 비해 낮았고 실질이자 지출액은 GDP의 2.6%로 프랑스(2.2%)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의 총리가 어떻게 유권자들에게 자국보다 이자 부담이 덜한 그리스를 상대로 채무를 탕감해주자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