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은행 자문으로…재협상 의지 드러낸 그리스

그리스 새 정부가 강경했던 기존 입장을 누그러뜨렸다. 미국 투자은행을 자문으로 고용해 구제금융과 관련해 적극적인 협상에 나설 의지를 피력한 한편 유로존과의 외교적 관계 개선에도 힘쓰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이에 따라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를 키웠던 그리스발 불안감도 점차 해소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구제금융 프로그램에 대한 협상 준비를 위해 그리스가 미국 투자은행 라자드를 부채부담 관련 자문으로 고용했다고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라자드는 2010년 그리스 정부의 재정 자문으로 고용됐었으며 첫 구제금융을 받았던 2012년에도 관련 자문을 그리스 정부에 제시한 바 있는 투자은행이다.


그리스 정부가 라자드를 고용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로 구성된 트로이카 채권단과의 채무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야니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이 "구제금융과 관련해 트로이카에는 협력하지 않겠다"며 강경 발언을 내놓은 지 불과 하루만에 분위기를 바꾼 것이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신임 그리스 총리도 적극적인 협상 의지를 드러냈다. 치프라스 총리는 이날 블룸버그통신을 비롯해 주요 외신들에게 보낸 이메일 성명에서 "그리스는 트로이카 등 채권단에게 채무를 상환할 것이며 유로존 국가들과도 관련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밝혔다. 그는 "관점은 다르지만 그리스와 유로존 모두 이득이 될 수 있는 합의가 조만간 나올 것으로 분명히 확신한다"며 협상 타결에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그리스가 누그러진 입장을 취한데는 트로이카를 비롯해 유로존 채권국들의 강경한 태도가 어느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은 그리스의 부채 문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해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자국 일간지 함부르거 아벤트블라트와의 인터뷰서 "채무국은 구제금융 협의를 준수해야 한다"며 새 그리스의 정부에 대한 부채탕감 가능성은 없다고 못박았다. 앞서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도 그리스가 구제금융과 관련해 독일을 협박하고 있다며 경고했다.


트로이카도 그리스가 합의에 적극 나설 것을 강조해왔다. 에르키 리카넨 ECB 집행이사는 "어떤 합의든지 협상 기한까지 이뤄지지 않으면 대출 연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 의장은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치프라스 총리의 발언에 환영의 뜻을 표하며 "향후 어떤 식으로 상황이 전개될 지는 이제 그리스 정부의 결정에 달렸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치프라스 총리와의 회동에서 그리스의 긴축반대 방침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리스의 구제금융 기한은 이달말까지다. 만약 기일내로 기간 연장에 합의하지 못하면 그리스 대형은행들은 곧바로 ECB의 자금 지원이 끊기게 된다. 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푸어스(S&P)에 따르면 작년 12월 그리스 4대은행(알파은행, 유로은행, 그리스국립은행, 피레우스은행)의 국내 예금 규모는 2133억유로로 한달 사이 54억유로가 줄었다. S&P는 이 같은 유출 속도가 1월에 더 가속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원활한 재협상을 위한 그리스의 행보는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은 2일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 미셸 사팽 프랑스 재무장관을 차례로 만난 뒤 3일에는 이탈리아를 방문에 재협상을 위한 각국의 협조를 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