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두바이에서 걸려온 항공사 女승무원의 전화

지난 달 30일 외국 항공사 객실 여승무원으로 일하는 독자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대한항공이 25년 동안 여승무원 채용기준으로 적용해 온 신장 제한(162cm 이상)을 폐지했다는 본지 단독 보도(1월31일자 [단독]대한항공 25년만에 女승무원 채용 '키 제한' 없앴다)를 보고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국내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항공사 여승무원이 되기 위해 몇 년 동안 꿈을 키우고 열심히 준비했다. 외국인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영어회화 실력을 쌓았고 마음가짐과 자세, 태도, 언행 등도 서비스 업무에 부족함 없이 갈고 닦았다. 객실승무원은 항공사는 물론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이라 생각했다. 항공사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에 부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대한항공 입사 시험에 도전한 그는 면접 단계에서 낙방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준비했던 만큼 아픔이 컸다. 왜 떨어졌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키(160cm)가 작다는 것 외엔 딱히 짚이는 게 없었다. 키 제한이 있다는 걸 모르진 않았으나 그보다 훨씬 중요한 다른 자질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여겼다. 결과적으론 순진한 생각이었다.

낙방 후 중동 두바이에 있는 외국 항공사에 자리를 잡은 그는 얼마 전 대한항공 경력 여승무원 시험에 도전했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외국 항공사 객실승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실력도 인정받고 다양한 경험을 쌓았지만 이번에도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키가 발목을 잡았다.

면접관은 "키가 원래 이렇게 작은가"라고 면박을 줬다. 그리곤 끝이었다. 질문에 답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바로 옆의 지원자는 한술 더 떠 '뱃살' 운운하는 모욕적인 언사도 들었다고 했다.


그는 "수년간 항공기 승무원으로 업무를 수행하면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키나 외모가 유독 국내 항공사에서 제약으로 작용하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비단 대한항공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승무원에게 늘씬한 연예인 같은 외모를 강요하는 건 다른 국적 항공사들도 마찬가지"라며 "승무원이 갖춰야 할 서비스 마인드나 비상상황 대처능력 등을 더 중시하는 외국 항공사완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했다.

그는 "대한항공의 채용제도 개선을 계기로 투철한 직업의식을 갖고 승무원에 지망하는 후배들이 좌절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에 통화를 부탁한 것"이라며 국제전화를 끊었다.

국내 항공사들은 올해 항공기단과 노선 확대로 사상 최대 규모의 객실승무원을 뽑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승무원의 지적처럼 채용문화는 여전히 고루하기만 하다.

대한항공이 신장 제한을 없앴지만 아직도 다수 항공사는 채용 기준에 신체적 조건을 따로 두고 있다. 항공산업이 성장하는 만큼 불합리하다고 여겨지는 채용제도는 이제 뜯어고칠 때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