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전략]원화강세 심화, 外人이탈 영향있나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최근 4년 박스권 상단을 돌파한 코스피가 사흘연속 숨고르기 국면을 이어가는 가운데 외국인 매수세 급감이 눈에 띈다. 올해 상승장을 견인한 주요 주체가 외국인이었다는 점 때문에 추가상승세가 주춤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정규장 종료시까지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35억원을 순매도했다. 지난 7일 이후 지속된 외국인 매수우위 기조에 16거래일만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외국인은 전일까지 15거래일간 코스피에서 일평균 3100억원 이상씩 매일 순매수했다. 이 기간 코스피는 2040선에서 2170선까지 상승했다.

이날도 장 초반에는 외국인이 400억원 이상을 순매수했고 코스피도 2160선 중반까지 올랐다. 하지만 외국인이 순매도로 돌아서자 코스피도 이내 상승탄력을 잃고 나흘만에 다시 2140선으로 밀려났다.

외국인 매수세가 감소한 데 대해 증권가의 의견도 분분하다. 우선 이날 원/엔환율의 급락으로 국내기업의 실적회복 기대감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이 이유로 꼽힌다.

오비이락(烏飛梨落) 격으로 이날 원/엔 재정환율(외환은행 고시)은 오후3시 기준으로 898.56원을 기록했다. 이는 원/달러 마감시간 기준으로 2008년 2월29일(895.57원) 이후 7년2개월만에 최저 수준이다. 지난해 10월15일 1000.75원이었던 원/엔환율은 이날까지 약 6개월여만에 10.5% 하락했다. 엔화대비 원화의 상대가치가 그만큼 절상됐다는 얘기다.

서동필 IBK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원/엔환율의 약세는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코스피 상승에서 잠시 빠질 만한 좋은 명분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올 들어 지속된 외국인 자금유입 및 이에 따른 코스피 상승의 배경에는 국내 수출대기업의 실적개선세가 뒷받침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이 명분이 퇴색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자금이 올해 거세게 유입된 점도 원화의 상대가치 절상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이달 들어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4조6000억원 이상을 순매수했다. 달러공급이 그만큼 많아지면서 원/달러환율의 낙폭도 그만큼 커졌다. 반면 유로화·일본엔화의 약세는 그만큼 더 커졌다. 원/엔환율의 추가하락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투자분석팀장도 "최근 외국인 자금유입으로 인해 원/달러환율이 당초 예상보다 많이 떨어진 점이 향후 기업이익 회복잠재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외국인 수요에만 의존해서는 한국증시가 기조적 상승세를 이어가는 데 한계가 있고 내국인 주식매수가 좀 더 활발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의 환율수준은 환차익을 노린 외국인이 국내증시에 진입하기에 무리가 없는 수준이라는 평가도 있다. 오태동 LIG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원/달러환율이 연말까지 1000원선까지 밀리더라도 현재의 환율수준(1070.00원)은 외국인이 충분히 환차익을 얻을 수 있을 수준"이라며 "원/엔환율 하락속도가 급격히 빨라질 경우에는 기업실적에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현재의 속도는 실적훼손을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환율의 영향에 대해 과도하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반론도 있다. 원/엔환율의 900원선 붕괴와 외국인 순매도전환은 단지 같은 날 발생한 별도의 이벤트로 봐야한다는 얘기다. 박석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이 환율변수로만 이탈했다면 피해정도가 가장 크다고 여겨지는 자동차 업종에 대해 순매도 물량이 크게 나왔어야 했다"며 "이날까지 외국인은 현대차, 기아차에 대해 각각 3거래일, 4거래일 연속으로 순매수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외국인의 이탈은 환율보다 실적변수가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봐야할 것"이라며 "외국인이 이날 실적개선 모멘텀이 강한 화학·정유업종은 순매수한 반면 실적모멘텀에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는 삼성전자에 대해 최근 매도우위로 돌아선 점이 이를 방증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환율이 외국인 자금유입 속도에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외국인의 추세이탈을 초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데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LIG투자증권의 오 팀장은 "한국증시처럼 가격이 싼 데다 실적모멘텀이 개선되는 증시는 글로벌 차원에서도 흔치 않다"며 "한국증시에서의 외국인 이탈이 오래 지속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미래에셋증권의 박 팀장도 "글로벌 유동성의 신흥국 유입으로 아시아 뿐 아니라 남미, 중동증시도 강세기조를 보이고 있으나 조만간 미국 금리인상 이슈가 다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며 "신흥증시에서는 경기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높고 서구 선진국향 공산품 수출비중이 높은 한국, 대만, 중국, 일본 등 동북아 4개국이 더 선호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