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수렁 퇴직연금, '교육' 십자가는 누가 지나

"퇴직연금 DC(확정기여)형 가입자에 대한 자산관리 교육 중요성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증권사가 퇴직연금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 교육은 무슨 돈으로, 누가 맡아야 하는 건가요?"

지난해 말 트러스톤연금교육포럼 주최로 개최된 연금 교육 세미나에서 객석에 앉아있던 한 증권사 직원이 패널들을 향해 이렇게 되묻더군요. 솔직한 돌직구에 장내가 잠시 술렁였습니다. 강연자로 나섰던 하타 죠지 일본 기업연금 종합연구소 이사장은 "일본도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연금 자산이 늘어나면서 증권사의 수수료 이익도 커지고, DC형 가입자들이 여타 금융상품에도 투자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 답했지만 객석은 여전히 시원치 않은 표정이었습니다.


DC형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한도가 기존 40%에서 70%로 늘어나면 자산관리의 교육은 더욱 중요해집니다. 적극적인 자산운용으로 '대박'을 꿈꿀 확률만큼 '쪽박'을 찰 확률도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금융투자가 본업인 증권사는 퇴직연금 시장에서 자산관리 실력을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기회기도 합니다.

증권사들은 그러나 수익도 내지 못하는 부서에서 교육에 쏟을 여력이 많지 않다고 항변합니다. 퇴직연금이 도입된 지 9년째를 맞이했지만 퇴직연금에서 흑자를 내고 있는 증권사는 한두 곳에 불과합니다. 은행, 보험에 비해 밀착영업이 어렵다보니 고객을 모집하기 어렵고, 미끼상품으로 역마진을 내기 일쑤입니다. 실적을 내기 힘든 부서다보니 '퇴직연금 부서는 퇴직 권고 대상자가 가는 곳'이라는 웃지 못할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입니다.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도가 워낙 강한 점도 문제입니다. 고객이 원리금보장상품만 찾으니 증권사의 자산관리 강점을 살리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증권사에 누적된 퇴직연금 18조3000억원 중 81.7%(14조9501억원)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이었습니다. 손해보험(98.3%), 생명보험(95.5%), 은행(93.2%) 대비로는 낮지만 여전히 안전자산에 돈이 쏠려있는 모습입니다. 때문에 금융투자업계에서도 DC형의 위험자산 한도를 확대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위험자산에 대한 자금 유입은 많지 않을 것이란 신중론이 우세합니다.


저금리 시대에 예금만 고수하다가는 노후가 불안해진다는 위기감에 위험자산 투자한도를 올린 정부의 정책 방향성은 옳지만, 금융투자업계와 근로자들이 마냥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이유입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진정으로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려면 퇴직연금 상품만 소개할 게 아니라 전 세대에 걸친 금융 교육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금융 상품을 접해보고 생애 주기에 맞춰 자산 계획을 세우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중장년층에게는 부부가 동반해 교육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합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주 사적연금 현장간담회에서 일반인들의 금융상품 이해도가 낮다는 점을 들어, 투자자가 별도로 운용지시를 하지 않더라도 투자자의 성향에 따라 운용사가 임의로 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디폴트옵션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현실을 반영한 결정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물고기를 잡는 법도 함께 알려줘야 하는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