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못 다 핀 반도체 꿈' 실리콘웍스로 이루나?

구본무 LG그룹 회장/사진제공=LG

LG (78,900원 ▲1,000 +1.28%)그룹의 새 식구가 된 지 약 1년 된 시스템반도체 계열사 실리콘웍스 (71,500원 ▼2,600 -3.51%)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그룹 내 계열사들의 반도체 관련 사업들을 조용히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몸집을 키워나가고 있어서다.

재계에선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IMF 외환위기 시절 대기업 빅딜 과정에서 놓친 '반도체의 꿈'을 다시 실리콘웍스를 통해 실현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그룹 내 루셈·LG전자의 반도체 관련 파트 속속 흡수=1년 전인 지난해 5월 23일. LG그룹의 지주사인 ㈜LG 이사회가 실리콘웍스를 인수할 때만해도 시장의 큰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했다. 연간 매출 4000억원 안팎의 디스플레이 구동 칩(DDI) 전문업체 정도로 인식됐었다. 그룹에서도 외부에 자회사임을 적극 알리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하지만 올 들어 미묘한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지난 2월 LG그룹의 또 다른 반도체 관련 계열사 '루셈'으로부터 시스템 집적회로(IC) 사업 일부를 60억원에 인수한 게 그 시발점이었다. 이때부터 실리콘웍스가 LG그룹의 반도체 사업 구심점 역할을 맡게 될 것이란 예상이 솔솔 흘러나왔다.

지난달 LG전자가 디스플레이용 시스템 반도체 설계 부분을 216억원에 실리콘웍스에 넘기면서 이런 관측에 더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흩어져있던 LG그룹의 반도체 사업이 앞으로 실리콘웍스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신호탄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아직도 LG그룹에서는 LG전자(모마일AP)와 LG이노텍 (213,500원 ▲1,000 +0.47%)(LED칩 웨어퍼), LG디스플레이 (10,320원 ▲40 +0.39%)(디스플레이용 인셀칩), LG실트론(반도체 웨이퍼) 등에 반도체 관련 사업부들이 산재해 있다. 이들 사업부가 속속 '하나의 뉴 LG반도체'로 뭉친다면 적지 않은 시장 영향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전망이다.

실리콘웍스는 ㈜LG가 지분 28.22%를 보유하며 직속 하에 배치했다. 주요 경영진도 옛 LG반도체 출신들이 대거 포진해있다. 한대근 대표와 김대성 전무는 각각 LG반도체의 수석연구원, 책임연구원을 거쳤다.

LG그룹 관계자는 "실리콘웍스를 인수하면서 중복된 기존의 사업부문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는 것"이라며 "어떤 방식으로든 그룹 내 비메모리 팹리스 사업을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은 맞다"고 말했다.

실리콘웍스 소개 자료/사진제공=실리콘웍스 홈페이지

◇구 회장-반도체 '애증의 관계'…방향성 피할 수 없어=특히 LG그룹과 반도체가 '애증의 관계'인 점도 최근 실리콘웍스의 행보를 더욱 주목하게 하는 이유다. 1999년 빅딜 정책으로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가 LG반도체를 합병했을 때 구 회장은 "반도체의 '반'자도 꺼내지 말라"며 큰 아쉬움과 실망감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차례의 기회가 더 찾아오기도 했다. 하이닉스가 2010년 매물로 나왔던 것. 외부에선 LG그룹이 되찾아 갈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인수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SK그룹이 기회를 거머쥐었다.

이후 SK하이닉스는 반도체 경기 호황을 타고 2013년부터 2년 연속 사상최대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전자업계 라이벌인 삼성전자 (76,700원 ▲400 +0.52%)의 효자 사업도 바로 반도체다. 어찌됐든 LG 입장에선 속이 쓰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최근 사물인터넷·스마트카가 대세로 떠오르는 전자업계의 추세 상 반도체의 필요성은 더욱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실리콘웍스, 더 나아가 LG의 반도체 사업은 두 거인에 맞서 정면 대결을 펼치기보단 '게릴라식 전략'을 쓰겠다는 복안이다. '비메모리'와 '팹리스'(설계)라는 두 키워드를 통해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위주로 세계 시장에 우뚝 섰다. 대신 LG그룹은 정보처리기능을 갖춰 '두뇌' 역할을 해 부가가치가 높은 비메모리 위주로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장치산업 특성상 후발주자로서 '규모의 경제'에 맞설 수 없다고 보고 설계와 개발을 전문으로 하면서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에 생산을 맡기는 방식을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모바일 AP 1등 기업인 퀄컴(미국)도 대표적인 팹리스 기업으로 실리콘웍스의 롤모델로 꼽힌다. 실리콘웍스는 여기에 차량용 칩과 전력반도체(PMIC) 등의 사업을 확대해 2018년까지 1조원대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구상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인수 첫해인 지난해 매출이 3907억원으로 전년보다 소폭 하락했지만 다른 계열사 사업부가 합쳐지면서 올해 매출이 적어도 지난해에 비해 50% 이상 증가할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 전장부품 사업과 함께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이 LG의 성장동력으로 떠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