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금지? '5·14' 조치에 열받은 공직사회

"문화체육관광부에선 내수 활성화를 위해 국내여행을 독려했다고 하지만, 공직자나 공기업 직원들은 해외여행 금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죠. 요즘 입사한 젊은 직원들이야 신경 안써도, 대부분 사람들은 공문 내용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됩니다."

정부에서 정한 올해 봄 관광주간(5월1~14일)이 끝난 후 사석에서 만난 한 공공기관 직원의 말이다. 정부가 발 벗고 나서 이 기간에 "연차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라"고 모든 부처와 공공기간에 공문을 내려보낸 것까진 좋았는데, '국내여행 실시'란 전제조건이 들어간 탓에 이런 볼멘소리가 나왔다.


실제 머니투데이가 19일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각 부처와 공공기관을 통해 입수한 공문엔 '국내여행을 통해 내수경제 진작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를 부탁한다' 등의 문구가 들어갔다. 문체부는 이 공문을 지난 3월말 각 부처와 산하 공공기관에 하달했고, 부처별 실시 계획을 받았다.

각 부처별 협조 요청 사항을 보면 △기획재정부: 관광주간 내 공공기관 휴가 사용 및 국내여행 장려 △산업통상자원부: 국내여행 촉진 캠페인 진행 협조 △여성가족부: 관광주간 내 연가사용 및 국내여행 장려 등 국내여행 독려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공무원들은 이 공문을 두고 '5·14 조치'라고 불렀다. 정부에서 "5월14일까지 이행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특히 공공기관 운영을 책임지는 기재부와 부처 중 가장 많은 산하 공공기관을 갖고 있는 산업부가 국내여행을 강조하다보니 공무원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 직원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A공기업 과장은 "가족들과 오랜만에 해외여행을 계획했었는데, 이 공문이 내려오고 나서 예약을 모두 취소하고 여행지를 바꿔야하나 고민하다가, 위약금이 너무 많아서 그냥 다녀왔다"며 "일부 직원들은 해외여행 대신 제주도를 다녀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경제부처 B과장도 "강제는 아니지만 정부에서 공문에 여행지를 직접 언급하면 공무원들은 따를 수밖에 없다"며 "많은 공무원들이 가족과 함께 국내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공무원들과 공공기관 직원들은 올 여름 휴가기간에도 국무총리실과 문체부를 중심으로 공무원들에게 국내여행을 독려할 것으로 내다봤다. C공단 한 직원은 "최근 내수경기가 좋지 않으니 정부가 휴가철이면 공무원과 공공기관에 국내여행을 가라는 공문을 내려보낸다"며 "작년에도 그랬고, 이번 여름 휴가때도 정부 차원에서 캠페인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나랏일을 하는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이라면 국내여행을 통해 내수 활성화에 기여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본인이 공직을 맡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공적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국가 경제 발전에 필요하다면 적극 나서는 등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것. 사회부처 D국장은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직원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며 "정부 정책상 국내여행 활성화가 필요하다면, 우리가 먼저 나서 분위기를 띄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