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들을 위한 힐링공간 '대숲' "모든 아픔 사라지길…"

/사진=각 대학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1 문) 저...너무 궁금한데 주변에 물어보기 부끄러워서...ㅠㅠ 있잖아요... 소개팅하면 뭐 하는 거예요? 어디서 만나요? 무슨 얘기 해요? 밥은 뭐 먹어요?
답1) '될놈될'입니다. 될 놈은 김밥에 떡볶이 먹고도 됩니다.(※될놈될: 될 놈은 된다)
답2) 어디서 순두부 먹고 잘 됐다던 '전설의 레전드(legend)' 사연을 봤던 것 같은데... (2일 '고려대 대나무숲' 중)

#2 "이제 곧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떠나신지 일년이 됩니다. 왜 그렇게 일찍 저와 우리 가족을 두고 떠나셨는지 원망스럽지만 절대 아빠를 미워하거나 하진 않아요. 단지 너무 그리울 뿐입니다."(지난달 28일 '단국대 대나무숲' 중)


#3 문) "저는 문과인데도 글솜씨가 없어 부끄럽게도 쭉 논문 짜깁기로 과제를 제출해왔어요. 가끔 제가 도덕적으로 해이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저만 이렇게 하는 게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 이렇게 살면 벌 받을까요?ㅜㅜ"
답) "거짓은 언젠가 결국 발각됩니다. 지금이라도 스스로 쓰는 연습을 하세요. 떡고물을 포기하지 못하면 계속 거짓의 노예로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1일 '연세대 대나무숲' 중)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소리가 울려퍼지던 전래동화 속 대나무숲이 청춘들의 힐링공간으로 자리잡았다. 각 대학별로 학생들이 운영중인 페이스북 페이지 '대나무숲'(이하 대숲) 얘기다. 대학생들은 대숲에서 고민을 털어놓으며 위로와 공감을 찾는다. 최근에는 대학교 대숲을 넘어 고등학교 대숲, 회사 대숲까지 생겨나고 있다.

서울대숲에 따르면 대학 대숲은 2013년 12월 처음 생겼다. 서울대생들이 자발적으로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하고 익명 제보를 받아 올리기 시작한 것이 시초다. 이어 각 대학 대숲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모두 학생회 등 학내 단체와 별개로 운영된다. 연대숲 페이지는 2만3000여명이 '좋아요'를 눌러 구독하고 있다. 서울대, 고려대, 한양대, 성균관대, 경희대 등의 대숲도 1만여명 이상이 '좋아요'를 눌렀다. 운영자들에 따르면 일평균 100~300건의 사연이 제보될 정도로 성황이다.


대숲들은 철저히 익명으로 운영된다. 대숲 페이지에 글을 올리려면 '대숲지기'라 불리는 익명의 운영자들에게 소정의 양식에 맞춰 익명으로 제보해야 한다. 고대숲지기 A씨는 "말 못할 고민을 아는 사람에게는 말할 수가 없으니까 아무도 모르게 소리치는 것이 대숲의 핵심"이라며 익명제로 운영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초창기에는 가벼운 연애상담 위주였지만 이제는 인간관계, 진로, 가정불화, 가정형편 등에 대한 개인적인 고민상담도 많이 들어온다고 대숲지기들은 설명한다. 연대숲지기 '공순이'(활동명)는 "최근에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토론 글이나 인생사, 가정사를 털어놓는 글이 늘었고 이런 글들이 좋은 반응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제보가 선정돼 대숲에 내걸리면 깊은 관심을 받고 다양한 답변을 받을 수 있다. 공감, 부러움, 위로 등 다양한 메시지가 오간다. 연대숲지기는 "'요즘 힘들다'는 내용을 대숲에 올려 댓글로 응원 받은 뒤 자살 생각을 접었다는 제보도 있었다"며 "대숲을 통해 사람들이 위안받는다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이처럼 대숲은 청춘의 고뇌가 오가는 곳이 됐다. 대숲 독자 정수영씨(24·여·숙명여대 4학년)는 "언젠가 해봤던 고민을 다른 친구들이 하는 것에 공감돼 '좋아요'를 누른다"며 "혼자만 하는 고민이 아니라는 생각에 '힐링'도 되고 자극받거나 동질감도 느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숲을 '양날의 검'으로 평가했다. 긍정적인 스트레스 해방구가 될 수 있지만 한계도 존재한다는 분석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대학생들이 대숲에서 느낀다는 재미는 곧 다른 이들에 대한 관심"이라고 해석했다. 곽 교수는 "예전 같으면 대면관계에서 이뤄질 또래 상담 기능이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졌다"며 "문제를 익명의 또래 친구들에게 털어놓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안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회의적인 의견도 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이버 공간에서 얻는 조언은 당장의 괴로움은 해결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서적 빈곤을 해소해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