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시대 비굴한 남성의 시각을 비웃다

서부시대 주인공은 단연 남성이다. 허리에 총을 차고 황량한 들판을 넘나드는 상남자의 투박한 걸음걸이가 서부 시대의 상징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이 남성 중심 사회에 여성이 판을 뒤집는다. 똑똑하고 지혜롭고 야무진 데다 동정심 또한 적지 않은 여성이 보수적인 남성 사회에 과감하고 진취적인 행동으로 주목을 받는다. 이 여성의 유일한 약점은 어떤 남자도 이 진취적인 기질의 소유자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어제도 오늘도 노처녀로 사는 그녀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남성에게 “결혼하자”며 적극적 구애를 신청하기도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답변이 전부다. 이제 서부시대 주인공은 남성에서 여성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미개척시대 네브라스카 주에 척박한 삶을 견디지 못해 아이를 죽이는 등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는 세 여인을 두고 긴급회의가 소집된다. 마을의 모든 남자는 400마일 떨어진 아이오와의 교회로 이송하는 임무를 거절하지만, 메리 비(힐러리 스웽크)는 다르다. 자진해서 세 여인의 이송 임무를 맡겠다는 그녀의 여정에 우연히 나무에 묶여 죽을 위기에 처한 조지 브릭스(토미 리 존스)가 참여한다.

정직하고 강인한 메리 비, 비굴하고 구질구질한 조지 브릭스. 여정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세 여인을 주도적으로 돌보는 임무는 메리가 전담하고, 조지는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 걱정한다. 간혹 위기의 순간에 조지의 영특한 방식이 통하기도 하지만, 메리가 지나는 길에 발견한 시체를 제대로 정리하느라 길을 잃어버리는 순간에도 조지는 뒤돌아보지 않고 혼자 마차를 끌고 사라진다.


영화는 고귀한 인물과 비굴한 인물의 대비를 통해 각자 살아온 삶의 방식이 주는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를 은밀하게 전달한다. 자존심 강한 메리의 ‘충격 제안’에 조지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소극적 수용’ 태도가 낳은 비극에서 얻은 삶의 교훈, 그리고 삶의 방식은 조지를 메리의 또 다른 페르소나로 변화시킨다.

오로지 자신을 위해 살았던 삶이 누군가를 위해 살 수 있다는 관계 팽창의 화두는 남성 중심의 서부시대가 숨겨온 치부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영화는 여성의 시각에서 다시 남성의 시각으로 옮겨온다. 조지가 통제할 수 없었던 세 여인과의 관계는 어느새 최소한의 행동 패턴을 읽을 수 있는 교감의 관계로 발전하고, 도착지에 세 여인을 두고 떠나는 심정 한 켠에선 상실과 이별, 분노와 망각의 감정이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친다.

그 남자의 고향은 장소가 아니라 마음이다. 인간에 대해 끊임없이 타오르는 애착과 미련이라는 고향 말이다. 하버드대 출신의 관록의 배우 토미 리 존스가 글렌드 스워사우트의 소설을 원작으로 감독, 각본, 주연에 이어 제작까지 맡았다. 힐러리 스웽크의 연기는 말 그대로 눈부시다. 8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