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부는 IPO시장…공모주 펀드도 울상

올해 증거금만 100조원이 몰리는 등 뜨거웠던 공모주 시장의 열기가 차갑게 식고 있다. 유명 패션 브랜드 '루이까또즈'를 보유한 태진인터내셜날은 지난 13일 저조한 수요예측 결과를 이유로 코스피 상장을 철회했고, 최근 수요예측을 마감한 세진중공업도 결과를 두고 장고중이다.

제조기업들의 성장성에 대한 의구심과 제약, 바이오 등 특정업종에만 쏠리는 자금 병목현상 등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15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주 청약을 실시한 기업 6개 기업 중 5개 기업(네오오토, 케이디켐, 매직마이크로, 리드, 하이즈항공)이 경쟁률 40대1을 넘지 못했다.

그 중 케이디캠(5.5대1)과 하이즈항공(3.1대1)은 한자리수 경쟁률에 머물렀다. 올해 상반기까지 신규상장 기업들의 평균 경쟁률이 500대 1(SPAC 제외)에 달했다는 점과 대조적이다.

경쟁률이 저조했던 곳의 공통점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네오오토), 조선(세진중공업), 항공(하이즈항공), 디스플레이(리드), LED(매직마이크로) 등 국내를 대표하는 산업을 전방산업으로 두고 있지만 공모시장에서는 외면을 당했다. 지난 13일 상장한 휴대폰 부품업체 나무가는 올해 첫 청약 미달을 기록했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신규 상장한 기업들이 기대와는 달리 성장성이 크게 둔화되는 모습을 보였다"며 "이로 인해 신뢰가 떨어졌고 국내 제조경기 둔화까지 겹치며 주가약세가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 등 해외진출로 내수침체를 돌파하려는 기업들도 많았으나, 결과는 시원치 않았다"며 "락앤락 등 대표기업이 중국 로컬업체 밀리며 실적악화와 주가급락이 이어진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태진인터내셔날은 소비주인 패션업체로 분류되지만 같은 영향을 받았다는 지적이다. 무차입금 경영과 막대한 현금자산(1368억원)으로 눈길을 끌었으나 분위기를 반전시키지 못했다.

태진인터내셔날 관계자는 "굳이 낮은 기업가치로 상장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회사의 문제라기보다 최근 시장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판단"이고 말했다. 이어 "상장재개는 내년 시장상황을 보며 논의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바이오·제약만 쫓는 노마드 머니=공모시장에 몰리는 자금 대부분이 장기투자 대신 단기수익을 추구하는 노마드 머니(유목민처럼 떠도는 자금) 성격을 지닌다는 점도 시장침체 배경으로 꼽힌다.

짧은 시간에 높은 수익률을 올리려는 성향이 있다 보니 증시에서 관심이 큰 업종의 IPO(기업공개)가 아니면 눈길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주 청약을 마친 바이오기업 엠지메드가 공모불황에도 불구하고 1350대1의 경쟁률을 기록한 것이 대표적이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최근 한미약품 등의 영향으로 바이오·제약의 수익률이 치고 나가자 공모투자도 그쪽으로 몰리고 있다"며 "수요는 바이오·제약으로 몰리는데 제조기업 공모는 계속 늘다보니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중소형주에서 대형주로 주도주가 바뀐 주식시장 추세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설정액 10조원 이상의 공모주 펀드(에프엔가이드 기준)의 최근 3개월 수익률은 0%로 원금을 지키는데 그쳤다는 얘기다.

청약 증거금 기준 역대 10위권에 들었던 토니모리·파마리서치프로덕트·더블유게임즈 모두 부진하다. 토니모리와 파마리서치프로덕트는 주가가 고점 대비 40%가량 하락했고, 더블유게임즈는 공모가 보다 13.5% 낮다.

증권사 관계자는 "청약에서 경쟁률이 높고 뜨거웠던 주식들이 공모가를 지키지 못하고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투심이 완전히 얼어붙었다"며 "상장기업들이 공모가를 상반기 실적기준으로 잡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창규 NH투자증권 연구원은 "IPO 시장 분위기가 좋지 않은 만큼 차라지 좀 쉬었다가 투자를 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상장 후 공모가 기준 많이 떨어지는 주식을 사는 등 변칙적인 투자 방법이 더 잘 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