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커지는 R공포 실체는?

미국에 점차 ‘R(Recession)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계속 나빠지는 경기지표와 기업들의 실적 악화, 주식시장 급락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물론 반론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중국의 경기 둔화와 일본은행(BOJ)의 마이너스 금리 결정 등 시간이 지날수록 비관론자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 불안한 증시, 폭락 경고 계속
RBC캐피탈 마켓은 2일(현지시간) 미국 증시가 50% 폭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주가수익 가치평가를 적용해 보면 대부분 주가가 50% 이상 하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거시 지표 악화와 중국의 경기 둔화, 상품시장 요동 등으로 뉴욕 증시의 변동성이 높아진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스탠다드앤푸어스(S&P)500 지수는 올 들어 7% 가까이 급락했다.

도이치뱅크도 최근 달러 강세와 증시 하락, 회사채와 국채간 금리 격차 확대 등을 감안할 때 경기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며 글로벌 유동성이 줄어들면서 증시 하락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비관론자인 앨버트 에드워드 소시에테제네랄 글로벌 전략가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양적완화 종료로 거품 붕괴가 진행되고 있다며 S&P500 지수가 550포인트까지 추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과거 경기가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면 주식은 평균 33% 하락했다. 현재 S&P500 지수는 2015년 최고점 대비 13% 하락한 수준이다. 한 가지 긍정적인 것은 경기침체가 끝나면 주가는 평균 62% 상승했다는 점이다.

◇ 경기지표 부진 ‘위험 수위’
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경기지표들도 경고음을 계속 보내고 있다. 지난해에도 전문가들의 예상에 크게 못 미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내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조업 지표가 부진하더라도 서비스업이나 소비 지표는 양호한 수준을 나타내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를 잠재웠다.

하지만 올 들어서는 상황이 바뀌고 있다. 고용지표를 제외한 모든 지표들이 경기 침체를 가리키고 있다. 3일 발표된 공급관리자협회(ISM)의 서비스업지수는 53.5에 그치며 약 2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마킷이 내놓은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도 53.2(확정치)를 기록, 2013년 10월 이후 가장 낮았다.

지난해 4분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도 0.7%(연율기준, 예비치)에 그치며 3분기(2% 증가)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이에 따라 지난해 미국 경제성장률은 2.4%로 전년 수준에 그쳤다.

문제는 미국 경제의 2/3을 차지하는 소비 부진이다. 4분기 소비자지출은 2.2% 증가해 3분기 3%에 못 미쳤다. 휘발유 가격 하락과 지속적인 일자리 증가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크게 늘지 않고 있는 셈이다.

특히 지난해 내구재 주문은 3.5% 감소했다. 이는 지난 1992년 이후 가장 크게 줄어든 것이다. 지난 24년간 내구재 주문이 줄어든 것은 5차례에 불과했다.

내구재 주문은 앞으로 경기를 읽을 수 있는 지표 가운데 하나다. 기업이 컴퓨터를 구매했다는 것은 추가로 고용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냉장고와 세탁기를 바꿀 정도로 여유가 있는 가구가 늘어나면 레스토랑 매출도 늘어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갈수록 지표들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소비지출 증가율은 제로(0)였다. 11월 0.5% 증가는 물론 전문가 예상치 0.1% 증가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12월 건설업지출도 0.1% 늘어나는데 그쳤다. 11월 수치도 0.6% 감소로 하향 조정됐다. 지난해 전체 주택투자가 8.1%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부동산 경기도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출처:S&P 캐피탈 IQ

◇ 기업실적 3분기 연속 악화
3일 현재까지 S&P500 종목 가운데 절반이 조금 넘는 262개 기업이 4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이들 기업의 시가총액 비중은 68.4%에 이른다. 현재 성적표는 주당순이익은 전년동기 대비 4.6% 감소했고 매출은 5.1% 줄었다. S&P500 전체로는 주당순이익이 5.8% 감소하고 매출은 4.2% 떨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3분기 연속으로 주당순이익이 감소하는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한 가지 더 고려해야할 것은 지난 4분기 자사주 매입규모가 무려 1250억달러(150조3500억원)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주당순이익은 약 2%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났다. 자사주 매입이 없었다면 4분기 주당순이익은 더 감소했을 것이란 얘기다.

실적 전망도 계속 나빠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 1분기 S&P500 기업의 순이익은 5.15%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4분기 연속 순이익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1월 조사에서는 1.21% 증가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었다.

2분기 전망 역시 1월 조사에서는 4.11%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지금은 0.39%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3분기 예상도 9.12% 증가에서 6.58% 증가로 하향 조정됐다.

◇ 경기침체 단정 이르다 반론도
하지만 미국 경제가 경기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시에테제네랄의 아네타 마코우스카 미국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비금융기업의 실적과 회사채와 국채간 금리 격차, 노동비용 상승률 등을 감안해 분석한 결과 1년 이내에 경기침체에 빠질 확률은 2%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경기침체는 2018년이나 2019년에 찾아올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미국 경제의 2/3은 확장 국면에 있고 최근 성장 사이클이 사라지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강조했다. 이어 “실적 전망이 낮아진 것은 그다지 놀라운 것이 아니다”며 “임금 상승 압력은 이제 막 현실화되고 있고 통화정책 역시 여전히 협조적이며 금리 인상도 매우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내수 마진 역시 높은 수준에 있고 기업들의 재무건전성 또한 에너지 업종을 제외하면 양호하다”고 덧붙였다.

내구재 주문 감소나 제조업 부진 영향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2.1%(2015년 3분기 기준)에 불과하다. 제조업 부진을 미국 경제 전체 부진으로 봐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제조업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 아래로 떨어진 상황이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제조업의 고용 비중은 20%를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