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1위 '울산의 눈물'…"매물 원룸 건물만 400개"

"총선 끝나고 결국 올 것이 왔다"

수년째 계속되는 글로벌 경기 불황으로 벼랑 끝에 몰린 현대중공업 (136,500원 ▼1,200 -0.87%)이 대대적 구조조정을 시작한다. 이미 지역사회에 소문이 무성하게 퍼진 터라 울산 시민들은 망연자실한 상황이다.


(☞본지 4월21일 보도 [단독]현대重, 3000명 감축-부서 100개 없앤다 참고)

'부자 도시' 울산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나가는 강아지 일당도 3만원"이라는 우스개가 회자될 정도로 풍족했다. 현금이 넘쳤고 식당가에는 먹고 마시는 손님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저성장과 저유가의 삭풍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부동의 전국 소득 1위(1인당 1956만원) 자리도 서울(1945만원)과 고작 10만원 차이로 좁혀지면서 흔들리고 있다.


◇"원룸 건물 매물만 400개"…민심 '흉흉', 정몽준 28년 철옹성도 무너져

특히 수주가 끊겨버린 현대중공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벌써 해양 플랜트 등을 중심으로 협력업체 직원들이 빠져나가면서 상당 부분 인력이 줄었다.

해양공장의 경우 한창 때는 2만2000여명의 작업자들이 이동식 변기를 쓰고 점심을 2부제로 먹어가며 일했지만 지금은 1만명 안팎 수준이다. 그마저도 진행 중인 몇몇 공사가 끝나면 더 이상 일거리가 없어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사무직 1200여명을 내보낸데 이어 올해 3000명가량을 추가로 감축할 예정이다. 생산직도 포함된다.

사정이 이러니 상권은 활력을 잃고 건물은 비어가고 있다. 현지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인근에서 팔려고 내놓은 원룸 건물만 400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마치 유령도시처럼 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20일 오후 울산 현대중공업 인근 한 식당의 텅빈 내부/사진=뉴시스

말 그대로 민심은 흉흉하다 못해 완전히 돌아섰다. 이번 총선에서 동구는 정몽준 전 현대중공업 고문의 28년(정몽준 전 의원 13대~17대, 안효대 의원 18~19대) 철옹성이 무너지고 진보성향의 무소속 김종훈 후보가 당선됐다.

정 전 고문의 후계자인 안효대 의원은 무려 2만3000여표 차로 대패했다. 투표 직전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현대중공업 구조조정을 막겠다"는 여당 대표답지 않은 '다급한 공약'도 내놨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얼마나 어렵나…수주 끊겨, 해양플랜트 일감 '0' 임박

현대중공업은 2013년 4분기 871억원의 연결기준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전환 한 이래 9분기 연속 흑자 달성에 실패하고 있다. 2014년 총 영업손실은 3조2495억원, 2015년 총 영업손실은 1조5401억원으로 9분기 누적 손실액은 4조8767억원이다.

올해 1분기 흑자전환을 노렸지만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실적 반등을 예고했지만, 끊긴 해양플랜트 발주와 이미 수주한 공사의 손실충당금이 추가 발생할 우려 때문에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현대중공업은 체질 개선을 위해 올해 1조원 이상의 자산을 매각한다는 계획이다. 영구채 역시 2200억원 규모로 발행해 적정한 유동성을 유지할 예정이다.

관건은 결국 수주 회복이다. 해양플랜트 수주가 멈춘 상황에서 올해 클라리지, 모호노르도 등 9기의 해양플랜트를 인도하면서 도크는 급속히 비어가고 있다. 남은 일감은 2017~2018년에 인도할 8기 정도다.

하지만 그게 끝이다. 더 이상 물량이 없어 인력과 공장을 놀려야 할 판이다. 세계 경기가 살아나고 유가가 올라가야 발주가 나오는데 그때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해양플랜트는 바다에서 석유나 천연가스를 캐내는 설비인데 지금처럼 유가가 낮으면 수익성이 떨어져 발주할 이유가 없다.

2014년 말 현대중공업 노조의 부분파업 당시 울산공장 모습/사진=뉴스1

◇거제도 '패닉'…정부, 조선·해운 등 강력 구조조정 추진

대우조선해양 (32,200원 ▼700 -2.13%)과 삼성중공업 (9,960원 ▼190 -1.87%)도 마찬가지다. 해양플랜트 발주는 진작에 끊겼고 상선 발주 역시 찾기 어렵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10월 이후 끊긴 수주를 만회하고자 지난달 자회사 망갈리아조선소 일감을 옥포조선소로 이관했다. 삼성중공업은 반년 가까이 신규 수주가 없다.

역시 '부자동네'였던 거제는 울산 못지 않게 공포와 불안에 휩싸였다. 회사의 위기가 지역주민 생활고로 이어지며 보험 해약률마저 급증하고 있다는 조사가 나온다.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노조 등은 거제시를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해달라며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범 정부 차원에서 빠른 시간 내에 조선, 해운 등 취약업종의 구조조정을 본격화한다는 방침이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 등 야권 지도자들조차 구조조정에 적극적인 터라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방안이 예상된다

M&A(인수합병) 등 기업 간 '빅딜'과 법정관리 같은 동원 가능한 수단은 모두 검토된다. 업계에서는 조선 '빅3'(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중 적어도 1개는 사라지거나 회사끼리 사업 양도 등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본다.

현대중공업 울산공장 전경/사진=머니투데이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