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급 원유가 '고품질'로 변신…석유화학계 '마이더스의 손'

“석유화학 경기가 올해부터 하강하고, 2019년까지 조정기에 들어갈 것이다”(화학산업 컨설팅 및 연구기관 IHS)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중장기적으로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LG경제연구소 임지수 연구위원)


석유화학 산업 전망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최근 유가 상승 움직임은 석유를 원료로 투입하는 석유 기반 제품·설비의 원가 경쟁력을 크게 약화시키고 있다. 특히 중국 석유화학 기업의 제품들이 범용에서 기능성 제품으로 점차 확대되면서 국내 기업들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 같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우선 값싼 저품질 원유(정제하지 않은 석유)를 고품질의 원유로 가공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화학제품 원료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대형 플랜트를 구축해 가격과 품질 경쟁력을 모두 확보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연구를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주도로 2014년 출범한 CCP(화학공정) 융합연구단이 맡아서 진행하고 있다.


◇저급원유 ‘고급화 기술’ 개발=융합연구단은 한국화학연구원(이하 화학연) 중심으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기계연구원의 과학자들을 비롯해 국내외 8개 대학 및 기업연구소를 포함 70여 명에 달하는 연구진이 참여하고 있다.

정부는 이 연구단에 최대 6년간 600억원의 R&D(연구·개발)비를 지원하고 있다. 연구단은 현재 화학연에 마련된 공동연구 공간에 모여 융합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CCP 융합연구단의 가장 큰 임무는 저급 원유를 고급 원유로 변환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연구단에 따르면 저급 원유를 고온·고압의 환경에서 수소와 반응시키면 2~3시간 내 85% 정도의 원유가 고품질로 바뀐다. 연구단 측은 “저급 원유의 90% 이상을 고급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기업에 이전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융합연구단은 또 불순물이 많아 자원 활용도가 떨어지는 중질원유의 성능을 높여 활용하는 연구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중질원유는 값이 싸지만 현재 국내 기술력으로는 처리가 쉽지 않다. 오일샌드(모래나 바위에 섞인 원유)와 셰일오일(퇴적암에 섞여 있는 원유) 등에서 추출한 중질원유의 품질을 높여 쓰면 국제 유가 상승과 하락에 따른 불확실성이 완화되고,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이 가능해진다고 연구단은 설명했다.

◇고급 원유 생산할 기반 기술 확보=연구단은 공정에 필요한 수소를 제철소에서 구하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제철소에서 생산하는 부산물 가스에는 수소가 다량 포함돼 있다. 현재 이 수소는 발전용으로만 일부 사용하고, 나머지는 폐기 처분되고 있다. 또 석탄·가스에서 추출한 일부 성분을 원유와 혼합해 같은 양의 원유에서도 순도가 높은 화학제품 원료를 대량 생산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이 같은 신기술이 제대로 구현돼 실효성을 얻기 위해선 화학제품 원료를 1년에 약 200만톤 이상 생산하는 대형 플랜트가 요구된다. 이는 현 국내 화학제품 원료 생산량(연간 약 1000만톤)의 5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박용기 연구단장은 “이 같은 대형·통합공정은 한 개인이나 기관의 연구로 이뤄낼 수 없기 때문에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한곳에 모여 집단연구를 하는 융합연구단 운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CCP 융합연구단의 연구가 가시적인 성과를 창출하게 되면 약 16조 원(기술료 8000억 원)의 플랜트 수출과 기술국산화에 따른 6조 원의 수입대체 효과 등을 거둘 것으로 전망했다. 또 3만명의 일자리 창출, 2550만톤의 이산화탄소(CO2) 저감 등의 경제적·사회적 파급효과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