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 1만원' 명동 화장품 알바, 땡볕에 30분만에…

"찐리 미엔 칸이샤"(들어와서 보세요.) "미엔 모 따우쩌"(마스크팩 50%.) 지난 4일 서울 중구 명동에서 밍양(25)이 판촉을 하고 있다./사진=한보경 기자

발바닥이 저렸다. 더운 날씨에 숨도 턱턱 막혔다. 어디 좀 앉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흔히 봐왔던 '화장품 판촉 아르바이트(알바)'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유창한 중국어'와 '장기 근무 가능자'라는 조건에 걸려 번번이 퇴짜를 맞다가 겨우 얻은 3시간 근무 기회였다.

'3시간은 너무 짧다'라는 자신감은 30분도 채 안돼 당혹감으로 바뀌었다.


◇중국어 유창해야…명동 매장 손님 80%, 중국인=서울 낮 최고기온이 35.7도까지 올라 올 들어 최고 기록을 경신한 4일 명동 화장품 매장을 찾았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잠시 서 있기만 해도 얼굴에 열이 오르고 땀으로 등이 축축해졌다.

화장품 매장에는 6명이 근무했다. 이중 중국인 밍모씨(25·여)가 매장 밖에서 판촉 업무를 했다. 이날은 기자까지 둘이다.


"찐리 미엔 칸이샤"(들어와서 보세요), "미엔 모 따우쩌"(마스크팩 50%)

일단 필수 중국어 멘트부터 배웠다. 매장 매니저(38)는 "명동 매장 손님 70~80%가 중국인 관광객"이라며 "한국인 손님은 10% 미만"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은 표현 몇 가지를 돌아가면서 쓰면 된다고 일렀다. 원래는 원어민 수준 중국어로 손님을 응대해야 하지만 궁여지책이다.

멘트를 외우고 옷을 유니폼으로 갈아 입은 뒤 더위가 절정으로 치닫는 오후 2시부터 실전에 들어갔다.

서울 중구 명동 화장품 매장을 찾는 손님 70~80%는 중국인 관광객이다. 지난 4일에도 매장을 찾은 손님 대부분은 중국인이었다./사진=한보경 기자

◇발 아프다 못해 저려…순간 현기증도=평일이지만 명동은 관광객으로 붐볐다. 중국·일본인이 단체로 물밀 듯 이동하고 한국인은 오히려 찾기 힘들었다.

제품을 들고 외운 멘트를 목청껏 외쳤지만 오가는 사람이 워낙 많아 소리가 묻혔다. 거리의 음악 소리도 판촉 알바에게는 경쟁자다.

바구니에 마스크 팩 하나를 담아 매장에 들어가는 손님에게 건네주면 다섯 사람 중 한 사람은 거절하고 그냥 들어간다. 무안한 기분쯤은 대수롭지 않게 넘겨야 한다.

"미엔 썅 마이 이송이"(크림 하나 사면 하나 더 드려요)

처음 30분은 그래도 할만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만만치 않았다. 서서히 목이 잠기기 시작했다. 편한 신발을 신었는데 발바닥이 아파 저리는 느낌이 났다.

덥고 습한 날씨도 적이었다. 텁텁한 기운이 온 얼굴을 감쌌다. 찜통 같은 더위에 몸까지 힘드니 순간 현기증이 나면서 외운 멘트를 잊어버렸다.

정신을 가다듬고 눈치껏 옆에 선 원어민 밍양을 따라 외쳤다. 땡볕에 지쳐 표정이 굳어지려는 찰라 누군가 나를 보고 웃어줬다. 옆 화장품 가게에서 나와 같은 일을 하던 언니였다. 짧은 순간 주고받은 눈웃음이 그나마 청량음료였다.

◇길묻는 외국인들 부지기수 "쓰레기통은 어디 있어요?"=유니폼을 입고 길에 서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질문을 하는지 처음 알았다. 본업 못지 않은 업무부담이다.

먼저 관광객들이 길을 물어본다. 명동성당, 가수 엑소(EXO) 팝업스토어 위치를 묻기도 하고 스마트폰에서 찾은 청바지 매장을 가리키며 어디 있는지 알려 달라고도 했다.

쓰레기통이 어디 있는지도 묻는다. 근처 가게 문이 왜 안 열려 있는지도 알려달라고 한다. 행인들이 모두 잠재적 손님인 터라 모른 척 할 수도 없다. 판촉 업무 중 수시로 인터넷을 검색해 질문에 대응해야 했다.

명동이라는 특성상 연예인을 볼 수 있는 건 장점이다. 짧은 근무시간이었지만 거리 홍보 중인 신인 남성 5인조 아이돌그룹을 만났다. 잠시 눈이 호강했다.

지난 4일 서울 중구 명동에서 화장품 판촉 사원 밍양(25)이 중국인에게 제품 소개를 하고 있다./사진=한보경 기자

◇시급 1만원, 이유있네=중국어가 필수라 매장에는 매니저를 제외한 전 직원이 조선족 혹은 중국 유학생이다.

업무는 50분 일하고 10분 쉬는 방식이다. 베테랑 근무자 밍양은 "익숙해져서 괜찮다"며 쉬는 시간에 다리를 주물렀다. 정기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 보통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 하루 8시간 근무한다.

시급은 1만원이다. 올해 최저임금이 시간당 6030원인 점을 생각하면 센 편이지만 그만큼 힘들었다. 체력은 물론 서비스업으로서 외국인을 상대하는 친절한 자세까지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이 고루 섞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