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은 자기계발 기회?…"어학원·피티 문의 늘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을 하루 앞둔 27일 오전 서울 강동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청탁금지법 준수 및 실천의지 다짐을 위한 서약식에서 5급 이상 간부급 공무원들이 선서하고 있다./사진=뉴스1

# 기자 5년차인 박모씨(30)는 10월부터 그동안 미뤄왔던 영어공부를 할 계획이다. 박씨가 신청한 영어강의는 강남역 근처 한 어학원의 저녁 7시 토익반. 이전에는 꿈도 못꿨던 일이다. 매번 잡히는 저녁약속에, 취재원과의 번개약속에 저녁시간을 개인적으로 제대로 활용해본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이 시행되자 상황은 예상보다 많이 바뀌었다. 회사 내부에서도 당분간 저녁약속은 되도록 잡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박씨는 자유로워진 저녁시간을 활용해 자기계발에 힘쓰기로 했다.


# 대기업 홍보팀에서 일하는 이모씨(34)는 요즘 '표정관리' 중이다. 평소에 술을 즐기지 않는 박씨지만 업무 특성상 1주일에 서너번은 저녁 회식에 참석했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그동안 업무상 저녁 회식을 장려해온 회사는 일단 10월 한달간 회식 금지령을 내렸다. 대신 점심시간과 오후시간을 활용, 업무에 주력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이씨는 저녁시간을 활용해 그동안 배우고 싶어한 복싱을 하면서 술로 만들어진 뱃살을 줄여볼 생각이다.

28일, 오늘 김영란법이 시행됐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들의 표정도 각양각색이다. 일부 대상자는 불필요한 회식자리가 줄고 개인이 활용할 수 있는 저녁시간이 늘어나 내심 반가워하는 눈치다.


서울 여의도·광화문 등 회사가 밀집된 지역의 어학원, 피트니스센터 등에 따르면 10월부터 외국어나 운동을 배우려는 사람이 늘었다. 한 어학원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 때문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9월 들어 어학원에 등록하겠다는 문의가 조금 늘기는 했다"며 "주로 퇴근 후 저녁시간 수업에 대해 물었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인근 퍼스널트레이너센터 한 관계자는 "이 일대는 여의도가 직장인 회사원이 많이 거주하는데 최근 전화가 걸려왔다"며 "보통 20·30대 여성이나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추석 이후에는 40대 남성들의 문의도 있었다"고 말했다.

며칠 전 어학원에 등록한 김모씨(32)는 "기자들도 최근 영어나 중국어 등 외국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만 저녁이나 주말에 시간을 별도로 내기 어려워 기회가 없었다"며 "김영란법 시행 이후 저녁약속이 상대적으로 줄 것으로 예상돼 이 기회를 활용, 영어공부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무 일선에 있는 일부 공무원들도 반기는 눈치다.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김모씨(33)는 "교대 근무가 많은 직업 특성상 가정에 충실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데 여기에 업무 관련 저녁약속까지 겹치면서 최근 낳은 아들의 얼굴도 제대로 못보는 경우가 많았다"며 "저녁약속이 줄어들어 생긴 여가시간 만이라도 가정에 충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영란법에 따른 변화를 크게 못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경기 부천시의 한 초등학교 민모씨는 "대부분 학교에서는 촌지나 선물을 금지하고 있고 이런 문화가 이어온 지 오래"라며 "젊은 교사들 사이에선 김영란법이 시행됐다고 해서 크게 변화될 건 없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