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백남기씨 자녀 "아버지 부검하지 마세요" 탄원서

부검에 반대하는 백남기 투쟁본부는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오후 서울중앙지법 영장담당재판부에 유족 이름으로 작성한 탄원서를 제출한다고 밝혔다. 사진 오른쪽 다섯번째가 고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씨./사진=윤준호 기자

고(故) 백남기씨(69) 유족들이 법원에 부검영장을 발부하지 말아달라고 탄원서를 제출한다.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및 살인정권 규탄 투쟁본부'(백남기 투쟁 본부)는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오후 서울중앙지법 영장담당재판부에 유족 이름으로 작성한 탄원서를 제출한다"고 밝혔다.


백씨의 큰 딸 백도라지씨는 탄원서에서 "우리 가족에게 형사 고발당한 경찰이 아버지 시신에 대한 부검영장을 거듭 신청하고 있다"며 "경찰의 손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시신에 다시 경찰의 손이 닿게 하고 싶지 않다"고 적었다.

이어 "10개월간 의료 기록이 이미 있고 이로써 아버지의 사인을 규명할 수 있는데도 경찰이 왜 거듭 부검영장을 신청하는지 유족으로서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며 "재판부가 유족 뜻을 받아들여 부검영장을 발부하지 말아주길 호소한다"고 밝혔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전날 밤 11시쯤 백씨 시신의 부검을 위한 압수수색검증영장(부검영장)을 검찰에 재신청했다. 첫 번째 영장이 기각된 지 약 21시간 만이다. 검찰은 경찰의 신청을 받고 법원에 부검영장을 청구했다.


처음 청구한 부검영장에 대해 법원은 "부검 필요성과 상당성이 없다"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두 번째 청구한 부검영장은 경찰에 추가자료 제출을 요청하며 판단을 보류한 상태다.

만약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면 경찰이 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시신 확보를 놓고 투쟁본부와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유족과 투쟁본부는 부검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박석운 투쟁본부 공동대표는 "의사들에게 자문을 구해 보니 백씨의 사망 원인이 물대포에 의한 외상성 뇌출혈이라는 일관되고 일치하는 의견을 확인했다"며 "10개월간 투병 중에 남긴 의무기록지로 사망 원인 또한 더 이상 궁금할 게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찰이 부검하려는 속셈은 사망원인을 창조적으로 조작하려는 꼼수가 아닌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투쟁본부와 함께 활동하는 의사들도 부검이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김경일 신경외과 전문의는 "지난해 11월 백씨가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와서 찍은 CT(영상기록) 사진 소견서를 보면 진단명으로 격막하출혈이라고 기재돼있다"며 "이는 뇌를 감싼 질긴 막인 격막이 외상으로 손상됐음을 명백히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정일 백남기 가족 변호인단 단장은 "법원이 첫 번째 영장에 대해 부검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없다고 밝힌 건 사인이 명백하기 때문에 부검으로 백씨가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할 권리까지 침해할 이유가 없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투쟁 본부와 서울대병원 등에 따르면 백씨는 25일 오후 1시58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뒀다. 지난해 11월14일 제1차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맨 지 316일 만이다.

전날 경찰이 부검영장을 다시 한 번 신청하자 소식을 들은 시민 200여명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모여 철야 농성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