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태안군, 검은 바다 '정화' 주민인심 '흉흉'

대학생 시절 봉사활동을 했던 태안 검은 바다가 사고 이전 모습을 되찾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 생활을 하는 정 봄씨는 최근 휴가차 태안군 의항해수욕장을 찾았다. 정씨는 대학시절 태안 원유유출 사건 당시 급우들과 4박 5일간 봉사활동을 펼쳤던 아련한 추억을 거슬러 태안을 재방문한 것이다.

깨끗해진 태안 바다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것도 잠시 주민들의 분위기가 과거와 사뭇 달라졌음을 느꼈다.


인심이 좋던 의항해수욕장 인근 주민들이 수년사이 왜 이렇게 날카로워졌을까.

2007년 12월 거센 파도에 휩쓸린 삼성중공업 해상크레인이 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도 남서방 6마일 해상에 정박 중인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와 충돌하면서 원유 약 10,900톤이 서해 바다를 뒤 덮었다.

이 사고로 태안 앞 바다는 온통 검게 변했으며, 어업과 숙박업으로 생계를 꾸리던 주민들은 생존권 위협과 깊은 시름에 빠졌다.


전국 대학생, 시민단체 등 200만 명의 자원 봉사자가 주민들과 함께 기름을 닦아냈으며, 9년이 지난 현재 태안 바다는 유류의 성분 중 하나인 PAHs가 미국 해양대기청의 권고수준보다 낮게 검출되는 등 해양생태계가 이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나 보상금 지급 형평성 논란이 일면서 주민간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태안군 의항리 2구 어촌계 100여 가구의 주민들은 편이 갈려 3년째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다.

의항 2구 어촌계 주민들은 1차 8억여 원, 2차 28억여 원의 보상을 받았으나, 주민간 보상금 형평성 문제제기가 화근이 됐다.

실제 '의항 2구 어촌계 보상금 지급내역'은 보면 1차 1천만 원대, 2차에는 30만 원대로 보상금이 책정된 어촌계원이 있는가 하면 1차 1천만 원대, 2차에서 9천만 원대로 보상금이 껑충 뛴 계원이 생겨나면서 주민들 사이에서 보상금 책정기준에 대한 각종 의혹이 돌고 있다.

의항 2구 어촌계원 A씨는 "형평성 없는 보상금 책정때문에 3년째 갈등을 빚다 주민 인심마저 흉흉해졌다"면서 "1,2차 보상금 지급내역을 살펴보면 보상금 관련 업무를 진행했던 수협직원, 전 어촌계장과 가까운 사이일수록 보상금이 많이 지급됐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보상금 책정기준이 형평성 없다'는 문제제기를 시작으로 법정공방까지 이어지면서 주민간 관계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틀어져 버렸다.

또 다른 논란의 불씨는 행사계약이다. 이는 굴 양식장 허가권이 있는 소유주가 타인에게 어업권을 임대하는 계약을 의미하는데 적법하게 행사계약을 하지 않은 이모씨 등 24명의 비계원이 3억 이상의 보상금을 받았다. 결국 의항 2구 어촌계원이 아닌 타동네 비계원에게 보상금이 지급된 사실에 대해 일부 계원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서산 수협 대책위 관계자는 "1차 보상은 국제기금에서, 2차 보상은 법원판결에 의해 지급된 부분이므로 혈연, 지연에 따른 보상금 과지급 문제는 없었다"며 "보상 이후 각종 의혹들로 어촌계 주민간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점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태안 원유유출 사고 배·보상 주체는 삼성중공업 크레인선단과 유조선인 허베이스피리트호 선사 등 두 곳이다. 사고 직후 허베이스피리트호 선사 쪽의 사고 책임이 인정돼 화주·석유업계가 분담해 만든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 Fund, 국제기금)이 보상 절차를 개시했다.

9년 만에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사정재판의 배·보상금 규모는 3800억 원이며, 의항 2구 어촌계처럼 보상금 문제로 갈등이 증폭되자 정부는 태안특별법 제11조 '보상받지 못한 자'에 대한 지원 조항까지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