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출입금지" 공동육아라더니…육아는 엄마의 전유물?

아빠출입이 금지된 서울의 한 대형마트 유아휴게실. 아이엄마가 모유수유를 하고 있다./사진=김도영 기자

# 이제 막 돌 지난 아들을 키우고 있는 A씨(33)는 얼마 전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외출했다가 곤란한 일을 겪었다. 기저귀를 갈기 위해 백화점 유아휴게실에 들어간 순간 모유수유 중인 아이엄마를 발견한 것. 그는 '왜 여기에 남자가 있냐'는 꾸지람까지 들어야 했다. A씨는 결국 쇼핑 중인 아내를 호출해 아기 기저귀를 갈아야 했다.

최근 육아하는 남성을 가리키는 '육아빠', 혼자 아이를 키우는 미혼부 '싱글대디'(미혼부) 등 신조어가 생길 만큼 아빠들의 육아참여가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육아휴직을 하는 아빠는 2014년 1분기 564명에서 2015년 1분기 879명으로 늘었다. 싱글대디도 1995년 17만2398명에서 2010년 34만7448명으로 2배 가까이 느는 등 증가추세다. 육아는 공동책임이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아빠육아를 위한 사회적 배려는 부족한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아빠와 아이가 '놀아주는' 모습에 치중될 뿐 실질적으로 아빠의 양육에 필요한 사회적 인식과 인프라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남성은 출입할 수 없는 유아휴게실이 대표적이다. 대부분 유아휴게실 내에는 수유실이 분리되지 않아 여성이 모유수유를 하고 있을 경우 남성은 들어갈 수 없다. 때문에 혼자 아이를 데리고 나온 아빠들은 유아휴게실에서 아기 기저귀를 갈기도, 분유수유를 하기도 눈치가 보인다. 이들은 남자화장실 구석에서 기저귀를 갈거나 차가 있는 주차장까지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한다.

'Mom's Lounge'(엄마의 공간)라고 적혀 있는 지하철역 내 유아휴게실. /사진=김도영 기자

서울지역 유동인구가 많은 쇼핑몰·마트·지하철역 등 약 10곳을 다녀본 결과 아빠 출입이 가능한 유아휴게실은 3곳 남짓. 남성출입이 가능해도 커튼이나 파티션 정도로만 분리돼 있어 모유수유 중인 엄마들은 아빠들의 출입이 반갑지 않다.

지하철 유아휴게실은 'Mom’s Lounge'라고 적혀 있다. '엄마'육아를 위한 공간이다. 이곳에 아빠도 출입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지하철 역사 관계자는 "가능은 하다"면서도 "단, 안에 아무도 없을 경우"라고 단서를 달았다.

광화문광장 유아휴게실. 수유실과 기저귀교환대가 한 공간에 있다. /사진=김도영 기자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붐비는 광화문광장 유아휴게실. 이곳 역시 기저귀교환대와 수유실이 한 공간에 있다. 3년째 이곳 환경미화를 담당하는 김도연씨(54)는 "아빠들이 유아휴게실을 이용하는 건 눈치싸움"이라고 말한다. 그는 "종종 아빠들이 아이기저귀를 갈기 위해 휴게실에 들어오지만 모유수유를 같이하는 공간이라 매우 조심스러워 한다"고 전했다.

'금남(禁男)의 구역'이 된 유아휴게실에 대한 아빠들의 목소리는 예상 외로 컸다. 지난달 20일 한 온라인커뮤니티에 '유아휴게실에 아빠 출입하게 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본인을 싱글대디라고 소개한 글쓴이는 "비교적 많은 유아휴게실에 '남자출입금지' 경고글이 적혀 있다. 휴게실은 부모라면 함께 사용할 권리가 있다"며 "여성이 아닌 유아의 휴게를 위한 곳이니 보호자인 부모 중 누구라도 출입이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온라인커뮤니티에 올라온 싱글대디의 글. /사진=온라인커뮤니티 캡처

아빠의 육아가 단순히 아이와 놀아주는 것이 아닌 현실적인 양육이 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10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빠 박모씨(29·회사원)는 "공원이나 마트 유아휴게실의 경우 아빠는 출입 금지인 경우가 많아 멀뚱멀뚱 서있는다"며 "아빠가 아이와 놀아주는 것만큼 아빠를 위한 육아인프라도 중요한데 여전히 이 부분에 대한 엄마들의 인식이나 사회적 배려는 부족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수유실이 분리되지 않은 유아휴게실을 무턱대고 아빠들에게 개방할 수도 없는 노릇. 100일된 아기를 둔 엄마 서모씨(32)는 "유아휴게실에서 수유하고 있다가도 밖에 남자목소리가 들리면 흠칫 놀랄 때가 많다"면서 "신체부위를 노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아빠들이 들어오는 건 불편하다"고 말했다.

수유실이 분리돼 있는 경기 하남의 한 대형쇼핑몰. 엄마아빠가 나란히 아이 기저귀를 갈고 있다./사진=김도영 기자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쇼핑몰들은 유아휴게실 내 수유실이 칸막이 등으로 분리하거나 별도의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최근 문을 연 경기도의 한 쇼핑몰에는 아빠들이 유아휴게실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든다. 휴게실 내 수유실은 미닫이문으로 분리돼 있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1인용 수유공간이 마련돼 있다.

하남에 거주하는 엄마 이모씨(33)는 "보통 유아휴게실에는 아빠들이 들어오지 못해 외출할 때 기저귀 교환은 내몫이었다"며 "하지만 여기선 남녀 구분 없이 들어올 수 있어 편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 유아휴게실에서 남자 출입을 금하는 게 현실이다. 유해미 육아정책연구소 팀장은 "여성이 양육의 1차적 책임자라는 시대착오적 발상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유아휴게실 설계시점부터 '엄마육아' 중심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아빠들은 출입할 수 없는 불평등한 공간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유 팀장은 "공동 육아의 관점에서 유아휴게실는 남녀가 함께 이용해도 문제될 게 없는 공간이어야 한다"며 "유아휴게실 내 수유실을 분리하고 아빠들도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양성평등에 부합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