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던 전세계 법인세 인하 경쟁, 실행 단계서 '제동'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법인세/사진=OECD

전세계가 법인세 인하 경쟁에 돌입했지만 정작 실행 단계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경쟁을 주도하는 미국과 영국에서도 회의론이 대두되는 상황이다.

12일(현지시간) 스위스에서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법인세 감면을 골자로 한 세제개혁안이 59%의 반대로 부결됐다. 앞선 여론조사에서 찬성과 반대가 각각 43%, 40%로 비등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압도적인 표차이를 보였다.

지난해 스위스 정부는 연방세와 별도로 내야 하는 주세(칸톤세)를 낮추는 대신 다국적 기업들에 부여하는 각종 세제 혜택을 폐지하는 내용의 개혁안을 마련했고 의회 승인까지 받았다.

이에 대해 중도 좌파 진영에선 칸톤세를 감면할 경우 연방정부의 부담이 커지고 이것이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반(反)기득권 기류가 스위스에도 미쳤다"고 평가했다.

국민투표 결과에 대해 스위스 재무장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각국이 치열한 세율 경쟁에 직면한 상태에서 스위스의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고 진단했다. 유럽 안팎에서 불고있는 법인세 인하 바람을 지적한 것이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간한 연간 보고서는 2015년 일본과 스페인, 이스라엘, 노르웨이, 에스토니아가 법인세를 내렸고 이탈리아와 프랑스, 영국이 추가 인하를 검토중이라고 전했다.

당시 OECD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법인세를 깎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2000년 OECD 평균 32%였던 법인세는 2008년 26%로 급격히 떨어졌고 25%를 찍은 2009년 인하 속도가 다소 둔화됐으나 다시 빨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불을 당긴 건 미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 국면에서 법인세 인하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고 지난 9일 드디어 세제개편 착수를 선언했다.

여기에 장단맞추는 게 영국이다. 브렉시트의 후속 대책으로 법인세 인하가 사실상 불가피해졌다는 이유에서다.

"2~3주 안에 개편안을 내놓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시장에선 벌써부터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심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5%를 목표로 하는 트럼프와 달리 당장 트럼프가 속한 공화당에선 20%가 거론되고 있다.

대규모 감세로 재정적자가 대폭 늘어날 수 있고 법인세 인하를 통한 기업 투자 및 이익 증대 역시 불투명하다는 지적 또한 제동을 거는 요인이다. 반(反)이민 행정명령을 계기로 한 야당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는 점도 세제개편 추진에 난제다.

영국의 경우 주요 경제대국과 비교했을 때 법인세율이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국제적 평가가 걸림돌이다. 지난 1월 자국 언론인 가디언은 "영국은 이미 조세회피처"라고 꼬집었다.

OECD 전문가들은 "낮은 법인세는 GDP를 늘리는 데 긍정적"이라면서도 "법인세 경쟁은 흔히 '바닥을 치는 경주'라 불린다"며 난색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