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르는 '유가전쟁'…OPEC 감산 연장 통할까

사진=블룸버그

"총싸움에 칼을 들고 나선 꼴이다."

미국 상품(원자재) 중개업체인 LCM커마더티스의 피에르 라카즈 CEO(최고경영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유가 안정에 나선 걸 두고 이렇게 꼬집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0일자 최신호에서 사우디가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이길 수 없는 전쟁으로 이끄는 듯 하다고 거들었다.


라카즈와 이코노미스트가 거론한 '총싸움'과 '전쟁'의 상대는 미국 셰일업계다.

국제 원유시장의 촉각이 온통 25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OPEC 연차총회에 쏠려 있다. 주요 산유국의 감산 합의 연장 여부가 이 회의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OPEC과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이 이번에 감산 합의를 연장하지 않으면 국제유가의 급락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이들은 지난해 말 역사적인 감산 합의로 유가 반등을 이끌었는데 이 합의는 다음달에 끝난다.

분위기는 긍정적이다.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 에너지장관과 알렉산더 노박 러시아 에너지장관은 지난 15일 국제 원유시장의 공급과잉을 막기 위해 "뭐든 다 하겠다"고 했다. 감산 합의를 내년 3월까지 9개월 연장하겠다고도 했다. 덕분에 국제유가가 반등에 나서 50달러선을 꿰뚫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가격 추이(단위: 배럴당 달러)/그래프=블룸버그

전문가들은 그러나 사우디와 러시아 같은 전통적인 산유국이 감산만으로 유가 안정을 이루긴 어렵다고 본다. 이코노미스트는 무엇보다 '적'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요 산유국이 그동안 미국 셰일업계를 과소평가해왔다는 것이다.

셰일은 단단한 진흙 퇴적암층이다. 여기서 원유나 천연가스를 추출하려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 셰일원유 개발은 한동안 경제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상황이 반전된 건 '수압파쇄법'(프래킹)이 개발되면서다. 물과 모래, 화학약품 등을 섞은 혼합액을 고압 분사해 퇴적암층을 깨고 원유와 천연가스를 추출하는 방식이다. 시간과 비용이 급격히 줄면서 몇년 전부터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주요 산유국은 2014년 중반 국제유가가 급락하기 시작한 뒤에야 비로소 미국 셰일업계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주요 산유국이 여전히 간과하고 있는 미묘한 변화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미국 에너지 컨설팅업체인 모비우스리스크그룹의 존 소서 부사장은 셰일원유 생산이 제조업에 가까워졌다고 설명했다. 예측가능성이 커지면서 셰일업계가 자본을 조달하기 쉬워졌다는 것이다. OPEC이 2014년 유가 급락세에 맞춰 오히려 산유량을 늘린 건 유가를 더 떨어뜨려 미국 셰일업계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자본력이 커진 셰일업계에는 이제 통하지 않는 전략이 됐다.

게다가 미국 셰일업계에 돈을 댄 PEF(사모펀드) 운용사나 연기금 같은 기관투자가들은 선물과 옵션 등을 통한 헤징전략도 잘 마련해뒀다. 유가 변동 대비책이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에너지를 비롯한 비금융 부문의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계약 물량 규모가 10억배럴이 넘는다. 5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이런 가운데 주요 산유국은 감산 합의에도 불구하고 암묵적으로 산유량을 늘렸다. 이 여파로 WTI는 선물가격이 현물가격보다 높은 상태(콘탱고)가 됐다. 이는 선물 투자에 강한 미국 셰일업계의 생산을 더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미국의 산유량이 내년에 하루 1000만배럴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2015년 4월의 고점 이후 최대치로 사우디와 러시아의 산유량과 맞먹는다.

이코노미스트는 주요 산유국이 이제야 반전에 나설 태세지만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봤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감산 합의 연장만으로는 사우디와 러시아가 올 하반기에 원유 재고를 5년 평균치로 줄인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IEA는 특히 기존 감산 합의에서 제외된 리비아와 나이지리아가 증산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이들이 감산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글로벌 원유 수요도 예상보다 더 약해지고 있다. 독일계 전략컨설팅회사인 롤랜드버거는 선진국의 원유 수요는 이미 정점에 도달했고 중국과 인도 같은 신흥국은 기존 선진국보다 원유를 더 효율적으로 쓸 것으로 예상했다. 수요가 주도하는 유가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미국 셰일업계도 취약성은 있다. 노동력·장비 부족으로 시추 비용이 불어날 수 있고 금리상승으로 투자 열기가 약해질 수 있다. '비이성적 과열'에 따른 과잉생산은 결국 유가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