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은 없어지고 IT기업만 남는다...인터넷은행은 40%가 IT인력

#전체 직원 3만5000명 가운데 25.7%인 9000명이 IT(정보기술) 인력이다. 한때 600명에 달하던 주식매매 트레이더들은 2명으로 줄었다. 주식매매 트레이더가 하던 대부분의 일은 200명의 컴퓨터 엔지니어들이 관리하는 자동화매매 AI(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켄쇼’가 수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소셜미디어 데이터 분석업체 데이터 마이너, 겐쇼테크놀로지 등 IT 전문업체를 차례로 인수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얘기다. 골드만삭스는 로이드 블랭크페인 최고경영자(CEO)가 2015년 “골드만삭스는 IT회사”라고 천명한 이후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IT 인력은 ‘IT공룡’으로 불리는 페이스북과 맞먹고 트위터의 2배에 달하는 규모로 증가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전통적인 은행의 틀 안에 갇혀서는 더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이 글로벌 은행들 사이에 확산되면서 국내 은행들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국내 은행들은 새로운 IT 조류를 기존 은행 업무에 접목하기 위해 핀테크업체, 온라인 플랫폼업체, AI업체 등과 제휴를 늘리고 외부에서 빅데이터와 AI 전문인력 채용을 늘리고 있다

위성호 신한은행장은 “AI는 간단한 텍스트 분석을 통해 서류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이상거래 징후를 사전에 파악하는 리스크 관리부터 시작해 고객문의에 응하고 불만사항을 처리하는 기본적인 상담까지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미래에는 콜센터와 채팅, 화상통화 등을 통한 금융상담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마존부터 스타트업까지 기술 제휴 늘린다=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지난달 28일 글로벌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과 디지털 혁신을 위한 전략적 계약을 체결했다. 올해 안에 아마존과 AI(인공지능), 블록체인, 클라우드 등 차세대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로드맵을 구상하고 향후 3~5년간 적용 대상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신한은행은 이미 북미지역 인터넷뱅킹 사이트에 아마존 클라우드 서비스를 활용해 서비스 만족도를 높이고 비용도 절감하고 있다.

국내 은행은 작지만 기술력이 있는 핀테크기업과도 제휴를 맺어 신기술을 활용한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신한금융의 신한퓨처스랩, KEB하나은행의 원큐랩, KB금융의 KB스타터스, 우리은행의 위비핀테크랩, NH농협은행의 NH핀테크 혁신센터 등 핀테크기업 육성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예컨대 KB금융은 지난 4월 KB스타터스에 핀테크기업 파워보이스를 추가했는데 국민은행은 파워보이스의 자연어 음성인식 기술을 생활금융 플랫폼 ‘리브’에 적용해 음성 인식 기반의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다.


농협은행은 핀테크 기업의 기술을 도입할 뿐만 아니라 핀테크기업이 이체, 조회 등 금융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도록 API(기반기술)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농협은행이 내놓은 ‘P2P(개인간거래)자금관리API’는 금융위원회의 ‘P2P대출 가이드라인’에 따라 고객으로부터 받은 투자 자금을 별도로 관리해야 하는 P2P기업의 고민을 해결해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중은행 한 디지털 담당 부행장은 “은행이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기술을 보유한 IT업체들과 손을 잡고 있다”며 “해외송금, 빅데이터, AI, 보안, P2P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체들과 제휴를 맺고 협업을 추진하면서 IT관련 부서들을 모아서 시너지를 내는데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순혈주의 버리고 외부 IT전문가 수혈=IT 인력도 늘리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하반기 공채에서 전체 인력의 30%를 IT 인력으로 뽑았고 우리은행은 전체 인력의 20%를 IT 인력으로 따로 선발했다. 신한은행, NH농협은행, 우리은행,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등 5개 주요 은행의 IT 인력은 2014년 2929명에서 지난해말 4627명으로 늘었다. 인터넷전문은행은 IT인력이 전체의 절반에 육박한다. IT 인력이 카카오뱅크는 120명으로 전체(298명)의 40%, 케이뱅크는 115명으로 전체(240명)의 48%에 달한다.

공채만으로도 부족해 IT전문가를 경력으로 채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신한금융은 경영컨설팅 회사인 베인앤컴퍼니의 조영서 전 금융부문 대표를 디지털전략팀 본부장으로 영입했다. 조 본부장은 인터넷 전문은행의 초기 사업모델을 설계한 인물이다. 신한은행은 빅데이터 전문가인 김철기 한국금융연수원 교수를 빅데이터센터 본부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이런 IT 인력들은 은행의 서비스 제공 방식 자체를 바꾸는데 투입된다. 일본의 도쿄미츠비시UFJ, 미즈호은행 등은 최근 로봇 은행원을 주요 지점에 배치했고 호주뉴질랜드은행(ANZ)은 글로벌 자산관리부문에서 재무설계사 업무를 지원하는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IBM의 AI인 ‘왓슨’을 활용하고 있다. JP모간은 내부 보안 업무에 빅데이터 분석시스템을 활용하고 있고 미국의 제스트파이낸스는 SNS(소셜미디어)상 행동 등을 분석해 신용도를 평가한다. 사람이 제공하던 서비스와 분석 업무는 IT 대체하고 사람은 IT와 분석 시스템 등을 개발해 관리하는 업무로 이동하고 있다.

시중은행 IT그룹 한 부행장은 “IT가 대체하는 은행 업무가 늘어나면서 기술 투자에 큰 비용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앞으로 은행의 성패는 AI, 핀테크 등 새로운 기술을 누가 먼저 개발해 도입하는지에 달려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