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참고용" 한마디에 '정책청문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 청와대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청와대) 2017.6.13/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첫 고비로 여겨졌던 문재인 정부 첫 내각 인사청문회. 문재인 대통령의 강공에 야당은 힘을 못 썼다. 개혁을 내건 ‘새 인물’에 이어 정치인 출신 장관을 대거 임명하면서 청문회 국면을 주도했다. 인사 원칙 훼손 논란엔 ‘양해’를 구하면서도 '청문회는 참고용'이라며 밀어 붙였다. 막판 쟁점이었던 조대엽 전 교수 대신 정치인 김영주 의원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로 인선한 것에 대해서는 정치인 불패 흐름 상 사실상 청문회 국면이 막을 내렸다는 평이 나온다.

문 대통령에게 김영주 후보자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카드다. 앞서 임명된 김부겸 행정자치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김현미 국토교통부,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은 모두 청문회를 통과했다. 문 대통령 국정과제와 철학을 잘 이해하고 추진할 능력이 있는 동시에 의원인 덕분에 야당의 '청문회 공세'를 비교적 무난히 넘겼단 공통점이 있다.김 후보자 역시 어렵지 않게 청문회를 통과할 전망이다. 임명이 이뤄진다면 현역 의원 출신 장관이 5명이 된다.

김 후보자 지명으로 문 대통령은 여성장관 30% 공약도 지킬 수 있게 됐다. 1기내각 여성 장관은 강경화 외교부, 김은경 환경부, 정현백 여성가족부, 김현미 국토부 장관 등 4명으로 김 후보자까지 총 5명이다. 공약 발표 당시 17개 부처를 기준으로 보면 여성 비율이 29%다. 신설되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까지 여성이 된다면 18개 부처 중 여성 장관 비율은 33%가 된다.

장관급까지 범위를 넓혀도 그렇다. 국무조정실장, 국가보훈처장, 국가권익위원장, 공정거래위원장 등을 합쳐 총 25개로 보면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박은정 권익위원장을 합해 여성은 7명이다. 벤처부를 제외하고 24명 중 29%다. 벤처부 장관이 여성이라면 비율은 32%다.


역대 초대 내각 중 가장 여성 비율이 높았던건 노무현정부다. 강금실 전 법무부, 한명숙 전 환경부 장관 등 총 19명 중 여성 4명이 입각, 비율이 21%였다. 김영삼정부땐 황산성 전 환경부 장관 등 총 16명 중 3명의 여성이 입각했다. 비율은 19%다. 김대중정부와 박근혜정부는 나란히 두 명의 여성 장관을 초대 입각시켰고 이명박정부 초대 내각엔 여성이 변도윤 여가부 장관 한 사람이었다.


청문회를 돌아보면 야당은 김동연 경제부총리 청문회부터 공격에 나섰다. 하지만 고공비행하는 지지율을 등에 업은 청와대와 여권 공략에는 번번이 실패했다. 청문 과정에서 상당한 흠결이 드러난 안경환 서울대 교수(법무부장관)와 조 교수가 낙마했지만 청문 결과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적 부담을 느낀 청와대가 자진 사퇴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야당이 작심하고 공세를 퍼부었던 김상조 공정위원장과 강경화 외교부장관, 송영무 국방부장관 등에 대해 문 대통령은 보란 듯 임명장을 수여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는 "청문회는 참고용일 뿐 최종 결정은 임명권자(대통령)가 하는 것"이라고 했다. 노무현정부때 도입돼 그간 검증보다 정쟁의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을 받아온 인사청문회에 발목잡히지 않고 소신대로 내각을 구성하겠다는거다. "국민의 검증은 통과했다"는 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청문회와 맞물려 국민의당의 대선 증거조작 사건, 문 대통령의 방미, 북핵문제,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편성 등의 굵직한 이슈가 줄줄이 터져 나와 야당의 화력을 분산시킨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한 야당 관계자는 "청문회에 집중하기 어려운 여건이었다"고 말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2017.7.17/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청문회에서 야당이 힘을 잃자 뜻밖의 정책청문회 국면이 열렸다. 한 여당 의원은 "그렇게 노력해도 안 되던 정책청문회가 청와대가 강하게 밀어붙이자 비로소 가능해지더라"며 "이번 청문회는 대체로 정쟁보다는 정책청문회의 성격을 보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백운규 산업부장관의 경우 탈원전정책에 대한 질의가 집중됐고 박능후 복지부장관, 최종구 금융위원장 역시 청문회에서 인신공격보다는 정책질의가 주였다.

다만 아직 불씨가 남은 영역도 있다. 진보 방송학계의 거두인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에 대해서는 야당이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등을 문제삼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후보자 역시 문 대통령이 강행을 결정할 공산이 크다. 공영방송 개혁이라는 화두를 감안하면 청와대가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정치인 출신인 만큼 청문회 통과가 유력한 김영주 후보자의 경우에도 일단 노동계의 반발 움직임이 감지된다. 금융노조 부위원장 출신인 김 후보자가 최근 KEB하나은행의 노사 분쟁 과정에서 사측 편에 섰다는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청와대가 청문회의 검증기능을 지나치게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한국당 의원은 "청문회는 고유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존속되고 있는 것"이라며 "지지율이 높은 정권이 일순간 무시할 수 있겠지만 불통의 이미지가 계속해서 쌓이고 있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임명강행을 규탄하며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7.6.14/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