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료 카드 결제 확대, 연간 8000억 수수료가 걸림돌

금융감독원이 보험료의 카드 납부를 확대하기로 하면서 보험업계가 연간 8000억원 가량의 가맹점 수수료를 물어야 할 처지에 빠졌다. 보험업계는 수수료를 낮춰 주거나 수수료를 사업비로 처리할 수 있도록 허용하지 않는 한 보험료의 카드 납부 확대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보험료 카드 납부는 해외에서도 사례가 거의 없어 논란이 가중될 전망이다.

◇운용수익 연 4%도 어려운데 2%대 수수료 ‘곤란’=금감원은 지난 21일 제1차 금융소비자 권익제고 자문위원회를 열고 카드사와 보험회사, 관련 금융협회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다음달 중으로 보험료의 카드 납부를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보험료 카드 납부는 1990년대 후반 자동차보험에 처음 도입됐다. 자동차보험은 의무보험이라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데 한꺼번에 수십만~수백만원의 보험료를 내야 해 현금 납부가 부담스럽다는 고객 민원이 많아서다. 이후 TM(텔레마케팅) 영업이 활성화되면서 일부 보장성보험에 대해서도 카드 결제가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지난 6월말 기준 국내 41개 보험사 중 31개 보험사가 카드 가맹점으로 등록해 카드로 보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전체 보험료 납입액 중 카드 납입 비중은 9.7%에 불과하다. 보험사들이 높은 수수료를 이유로 매월 보험료를 납입해야 하는 보험에 대해서는 신용카드 결제를 거절하거나 1회차 보험료만 카드로 받고 2회차부터는 카드 납부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1회차 이후 계속보험료에 대해서도 자동으로 카드 결제가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보험사들은 저금리가 계속되며 연 4%대의 운용수익률도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카드사에 결제금액의 2%대의 수수료를 지불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보험료가 카드로 결제될 때마다 보험사는 카드사에 2.2~2.3% 가량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현재 1년 정기예금 금리 1.1∼1.2%의 2배 수준이다.

생명보험협회 한 관계자는 “월 보험료가 100만원이라면 자동이체 수수료는 건당 200원만 내면 되는데 신용카드 수수료는 100배 이상 높은 2만3000원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보험료 카드 납부가 확대되면 손해보험업계만 연간 3000억원, 생명보험업계까지 합하면 8000억원에 가까운 수수료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사업비 처리도 안 되는 수수료…난감한 보험사=게다가 카드 수수료는 사업비로 처리하지도 못한다. 현재 보험사는 보험료를 받을 때 드는 비용인 수금비로 보험료의 약 1.5% 수준을 책정해 사업비에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카드 수수료는 수금비로 처리할 수 없다.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에 따라 가맹점이 고객에게 수수료를 전가하는 것은 위법이기 때문이다. 보험료를 카드로 결제하면 보험사로선 가맹점 수수료만큼 사업비에 포함할 수 없는 별도의 비용이 생기게 된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이전에 없던 카드 수수료를 새로 부담해야 하면 결국 보험료를 인상할 수밖에 없어 소비자에게 부담이 돌아가게 된다”며 “소비자 편의를 위해 보험료 카드결제를 확대한다면 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하고 여전법에 예외조항을 둬 수수료를 비용 처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도 “보험료 카드 결제는 해외에서도 사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일본과 미국 등에서 극히 일부 보험에 대해서만 허용하고 있다”며 “그나마 미국과 일본의 경우도 보험료는 카드 수수료가 매우 낮거나 수수료를 보험사가 아닌 고객이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보험업계는 아울러 일정 수익을 덧붙여 고객에게 돌려주는 저축성보험은 적금이나 적립식펀드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카드 결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보험업계 다른 관계자는 “일부 보장성보험과 공과금의 카드 결제는 공익성을 감안해 허용한다 해도 원금에 수익을 더해 돌려줘야 하는 저축성보험과 변액보험 등에 대해 카드 결제를 허용하는 것은 은행 적금을 신용카드로 내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