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시공사, 이사비 못 준다"…정비사업 수주 '전면 손질'

지난 9월27일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 사업 공동사업시행 건설업자 선정을 위한 임시총회가 열린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 현장 모습. /사진=뉴스1

오는 12월부터는 건설사가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수주할 때 조합원에게 이사비나 이주비를 지원하지 못한다. 조합원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다 적발된 건설사는 시공권이 박탈당하고 2년 간 정비사업 입찰도 제한된다.

국토교통부는 재건축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비리를 차단하기 위해 이 같은 내용의 ‘정비사업 시공사 선정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번 개선방안은 ‘입찰-홍보-투표-계약’으로 이어지는 정비사업 시공사 선정 과정 전반에 걸친 비리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우선 재건축사업의 경우 입찰단계에서 건설사가 조합원에게 시공과 관련 없는 △이사비·이주촉진비 지급 △이주비 융자·보증 △재건축 초과이익 부담금 대납 등을 제안할 수 없다. 건설사는 설계, 공사비, 인테리어, 건축옵션 등 시공과 관련한 사항만 제안할 수 있다. 이를 위반한 건설사는 해당 사업장의 입찰을 무효로 한다.

이사비는 포장이사 비용 등 이사하는 데 필요한 경비로 통상 몇백만원 수준이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지난 9월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수주 과정에서 조합원에게 이사비로 70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제안해 논란이 됐다. 이 사안은 국토부가 위법이라고 결론 내리면서 일단락 됐다.

그동안 이사비는 시공사가 실비 수준에서 지원하던 것이 관례였지만 앞으로는 조합이 자체적으로 정비사업비 안에서 지원해야 한다. 서울시는 토지보상법(84㎡ 기준 약 150만원) 수준으로 지원하도록 관련 규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재건축 조합원이 종전자산을 담보로 전·월세비용을 대출받는 이주비는 건설사가 융자·보증 할 수 없도록 했다. 다만 재개발사업은 영세거주자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 건설사의 융자·보증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 경우 무상 이자지원은 할 수 없고 시중 금리 수준의 유상지원만 할 수 있다.

@머니투데이 유정수 디자이너

홍보단계에서는 건설사뿐 아니라 건설사와 계약한 홍보업체가 조합원에게 금품·향응 등을 제공하는 경우에도 건설사가 처벌을 받는다.

금품 제공으로 건설사가 1000만원 이상 벌금형을 받거나 건설사 직원이 1년 이상 징역형으로 처벌받는 경우 건설사는 해당 사업장의 시공권을 박탈당한다. 2년 간 정비사업 입찰 자격도 제한된다. 건설사가 고용한 홍보요원(일명 OS요원)이 1년 이상 징역형을 받는 경우에도 건설사는 동일한 처분을 받는다. 다만 이미 공사가 시작된 경우에는 시공권 박탈 대신 과징금(공사비의 일정 비율 이내)을 부과할 예정이다.

홍보요원들의 과도한 홍보를 막기 위해 홍보요원의 명단을 조합에 사전 등록하는 규정도 마련했다. 홍보 장소도 조합에서 정한 곳에 설치된 공개 홍보부스 1개소로 제한했다.

1차 현장설명회 이후 시공사 선정 총회 전까지 미등록 홍보요원이 활동하거나 개별홍보 행위가 3회 적발되면 해당 건설사의 입찰은 무효로 처리할 계획이다.

부재자 투표 요건도 강화한다. 부재자 투표는 시공사 선정 총회 당일 참석하지 못하는 조합원이 사전에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지만 관리가 소홀하다 보니 이 과정에서 매표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부재자 투표 자격은 해당 정비구역 밖의 시·도나 해외에 살고 있어 총회 참석이 곤란한 조합원으로 한정하기로 했다. 부재자 투표 기간도 하루로 제한한다.

계약단계에서 설계변경 등으로 공사비가 과도하게 늘어나는 것도 방지한다. 건설사가 시공사로 선정된 이후 실제 계약할 때 공사비를 입찰 당시보다 일정비율 이상 올리면 한국감정원의 적정성 검토를 받아야 한다.

조합임원을 도시정비법상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적용 대상으로 추가해 조합임원과 건설사 간 유착도 차단할 계획이다.

이 같은 개선사항은 도시정비법과 하위법령 등을 개정해 빠르면 오는 12월부터 순차적으로 적용할 예정이다. 금품 제공 건설사의 시공권 박탈과 입찰자격을 제한하는 내용은 법 개정 사항으로 내년 상반기쯤 시행 예정이다.

앞서 국토부와 서울시는 지난 9월25일부터 정비사업 시공사 선정과정을 합동 점검하고 있다. 다음달 1일부터는 서울 강남권 재건축 현장을 중심으로 △회계처리 등 조합운영의 전반에 관한 사항 △시공사 선정과정 △계약내용 등을 집중 점검할 계획이다. 효과적인 점검을 위해 경찰청과 협조체계도 구축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이사비 등의 금전지원이 아니라 시공품질을 높이고 공사비를 절감해 조합원의 분담금을 낮추는 방식으로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