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글로벌키워드10]한반도가 국제사회를, 美우선주의가 세계를 흔들다(종합)

세계 곳곳에서 극우 포퓰리즘 세력이 득세하며 기존 질서를 뒤흔들고 종교와 인종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면서 폭력사태와 테러가 속출했다. 지난해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결정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선 승리가 분열의 기폭제가 됐다는 평가다.

분리독립 바람은 유럽 곳곳으로 확산하고 있다. 카탈루냐는 지난 10월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치르고 사실상 독립을 선언했다. 이탈리아 밀라노가 속한 롬바르디아주, 베네토주도 주민투표로 자치권 강화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를 확인했다. 영국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도 브렉시트에 맞서 내년 말쯤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실시한다.


유럽의 분열상은 주요국 선거에서도 확인됐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9월 총선에서 제1당 자리를 지키며 4연임에 성공했지만 12일 현재까지 연정을 구성하지 못했다. 프랑스도 중도 성향의 에마뉘엘 마크롱이 극우정당인 국민전선 후보와 대선 결선(5월)을 치러야 했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 오스트리아가 올해 치른 총선에서 극우정당이 선전했고, 체코도 반EU 성향 ‘긍정당’이 정권교체를 이뤘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는 국제사회의 분열을 가속화 했다. 이슬람 국가를 겨냥한 반이민 행정명령에 이은 불법체류청소년추방유예(DACA) 프로그램 폐기 결정 등은 미국 안팎에서 종교, 인종 갈등을 부추겼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해 중동의 정정불안을 고조시켰다.

트럼피즘(Trumpism)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성(Trump)과 주의(主義)를 뜻하는 이즘(ism)이 합쳐져 만들어진 신조어다. 트럼프 대통령의 독특한 언행과 정책에 대한 대중의 인기를 의미한다. 대통령이 된 이후 트럼피즘은 ‘반(反)이민’ 행정명령, 멕시코 국경 분리장벽 설치,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 이란의 국제핵협정 인증 거부 등으로 나타났다. 이달 초에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하면서 중동에 피바람이 불었다.


트럼피즘은 세계 다른 지역으로도 번졌다. 반이민, 보호주의, 반세계화 등의 정서가 늘고 극우 정치의 득세 현상이 트럼피즘으로 정의됐다.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서 극우 정당들이 세력을 확대했다. 트럼피즘은 국제 무역 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중국과 일본, 한국, 멕시코 등 대미 무역 흑자국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압박을 가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철회,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 등 다자무역협정 파기 위협도 이어졌다.

한·미FTA(자유무역협정)도 발효 5년 만에 트럼피즘의 희생양이 됐다. 트럼피즘은 ‘트럼프식 일방주의’에 대한 비판과 조롱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인종과 성별, 종교 등의 차이에 따른 차별과 배격은 국제사회에서 ‘위대한 미국’이 아닌 ‘왕따 미국’을 만들었다는 평가다.

7월 한 달 동안에만 두 차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북한 리스크’는 세계 시장을 시끄럽게 했다. 북한은 7월 4일 ICBM급 미사일 1기를 발사한 데 이어 같은 달 28일에 ICBM급 미사일을 쐈다. 한 달 후인 8월 29일엔 처음으로 일본 상공을 지나가는 미사일을 발사해 일본 열도를 충격에 빠트렸다. 9월 3일에는 6차 핵실험까지 단행했다.

미국 주도로 유엔 안보리가 원유 수출을 동결하는 등 이전보다 강경한 제재를 결의하며 압박에 나섰으며, 미국은 급기야 ‘군사 옵션’까지 꺼냈다. 쉼 없이 진행된 김정은 북한 노동당 국방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말 전쟁’도 북핵 공포를 심화시켰다. 미국은 북한이 핵 개발을 막도록 중국이 손을 써주길 바랐지만 미온적이었다.

이 가운데 ‘군사 옵션’을 여러 차례 입에 올린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에 방점을 찍어 온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대북정책 ‘엇박자’도 여러 차례 도마에 올랐다. 연말에 접어들며 시장은 북한 리스크에 둔감한 모습이다. 북한이 지난 11월 29일 75일 만에 다시 ICBM급 미사일을 발사했음에도 이날 전 세계 증시는 상승하고 안전자산 엔화의 가치는 도리어 하락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후 위험자산이 급락하고 엔화가 급등했던 이전과는 다른 추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가장 논란이 거셌던 화두는 거품이다. 주식을 비롯한 주요 자산 가격이 고공 행진하자 거품 경계론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물론 걱정할 단계가 아니라는 낙관론도 맞섰다.

올해 미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 경신 행진을 펼쳤다. 특히 다우지수는 올 들어 지난 18일까지 69번이나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미국 증시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저점을 찍은 2009년 3월 이후 줄곧 강세장을 유지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BofAML)에 따르면 미국 증시 역사상 1945~56년에 이어 두 번째로 강력한 상승세다. 또 1987~2000년 강세장 이후 최장기 상승 기록이다. 글로벌 증시도 한껏 달아올랐다. 유럽의 회복세가 탄력받은 게 호재가 됐다. 일본도 최근 16년 만에 가장 긴 성장세를 누리며 증시가 26년 만에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비관론자들은 시장이 너무 급격히 달아올랐다고 우려했다. 호재를 인정해도 자산가격 오름세가 너무 가파르다는 것이다. ‘버핏지표’도 심각한 거품 신호를 나타냈다. 버핏지표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주가 수준을 가늠하는 최선의 단일 척도로 꼽는다. 지표가 70~80% 수준이면 주식을 매수할 적기지만 100%가 넘으면 매수를 멈춰야 한다는 게 버핏의 지론이다. 최근 이 지표는 140%를 웃돌고 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가격이 급등락하면서 거품 논란이 더 거세졌다.

올해 가장 뜨거웠던 자산이다. 올 초 개당 1000달러 정도였던 비트코인 가격은 폭등을 거듭하며 지난 17일 1만9300달러 이상으로 올랐다. 연초 대비 1800%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시가총액도 3235억달러로 프랑스 GDP(국내총생산)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각국 정부의 규제 방침 등으로 최근 급락세로 돌아섰다. 이달 22일 현재 비트코인 가격은 1만4600달러 정도로 고점 대비 24%가량 급락했다. 비트코인 열풍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가 주도했다. 직장인과 은퇴자는 물론 고등학생, 대학생까지 비트코인 투자에 뛰어들었다.

짧은 시간 큰 수익을 남긴 사람도, 비트코인 투자에 몰입하는 ‘폐인’도 등장했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이용해 시세 조작에 나서는 사기 사례도 등장했다.

하지만,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와 시카고상품거래소(CME)가 선물거래를 시작했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중 하나인 ‘NYSE 아카’는 비트코인 선물을 기초자산으로 한 상장지수펀드(ETF) 상장도 추진 중이다. 이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비트코인 ETF 상장을 신청했다. 제도권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하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가상화폐 거래소 해킹 위험, 비트코인 가격 폭등에 ‘거품’ 경고가 나오고 있다. 각국 정부는 뒤늦게 가상화폐 거래를 유사수신행위로 규정하고 관리·감독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실업률은 낮아지는데 물가는 별로 오르지 않는 ‘저물가 미스터리’는 올해 전 세계 중앙은행들을 골치 아프게 한 난제다. 물가상승률을 정책 목표로 두고 있는 중앙은행들은 이전에 볼 수 없던 낯선 추이에 곤혹스러운 한 해를 보냈다.

올해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선 경제성장률과 실업률이 개선됐다. 그런데 물가상승률은 오르지 않거나 심지어 떨어졌다. 취업자가 늘고 실업률이 떨어지면 임금과 물가가 올라야 하는데 이 ‘상식’이 맞지 않은 것이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지난 9월 “미스터리”라고 지칭했다. 11월 뉴욕대 강연에선 여기에 대한 ‘당혹감’을 부연했다. 저물가의 원인 중 공통 요인은 정체된 임금상승률이다. 노동시장 세계화, 기술발전에 따른 전 세계적인 유휴노동력, 노동조합 약화로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저하된 점 등이 임금인상의 제약요인으로 꼽힌다.

세계 경제가 기존 모델로 설명될 수 없는, 이전과 다른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다는 가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11월 의사록에 따르면 다수 FOMC 위원들은 물가상승률이 현재 예상보다 오랫동안 2%를 하회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옐런 역시 “낮은 물가상승률이 일시적이지 않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겼다.

독일 투자은행 도이체방크는 최근 낸 보고서에서 내년 글로벌 금융시장을 위협할 30대 리스크를 꼽았다. 주목할 건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2개가 중앙은행들의 통화긴축과 관련 있다는 점이다. 통화긴축은 중앙은행이 돈줄을 죄는 걸 의미한다. 중앙은행이 느슨하게 풀어놨던 돈줄을 죄면 부양자금에 의존해온 세계 금융시장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주택시장도 마찬가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내년에 금리를 3번 더 올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시장에서는 한 차례 이상 더 늘 수 있다고 본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세제개혁에 따른 감세 훈풍이 성장세를 자극하면 FRB가 긴축 고삐를 더 죌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긴축 움직임도 포착됐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신중하지만, 옌스 바이트만 독일 분데스방크 총재를 비롯한 강경파는 통화정책 고삐를 바짝 조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영란은행(BOE)은 지난달 10년 만에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으며, 캐나다 중앙은행도 올 들어 기준금리를 두 차례 높였다. 노르웨이 중앙은행은 금리인상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스위스 중앙은행, 일본은행도 긴축 가능성을 내비쳤다. 중국 정부는 경제 뇌관으로 꼽히는 과도한 부채를 해소할 목적으로 부채축소 정책을 강화하고 있어 각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전기자동차 시대가 활짝 개화했다. 기술의 발달로 성능이 좋아지고, 가격이 내려가면서 소비자들의 관심도 커졌다. 에너지 전문 컨설팅 기관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NEF)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28만7000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3% 급증했다. 올해 총판매량은 사상 처음으로 100만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돋보인 국가는 단연 중국이다. 올해 세계 전기차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팔렸다. 지리 자동차는 2020년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 중단을 선언했고, 창청차는 지난 10월 독일 BMW와 전기차 생산 합작법인 설립을 발표했다. 광저우 자동차는 텐센트와 협력해 AI(인공지능) 탑재 스마트 전기차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스타트업 니오(NIO)는 지난 18일 회사 설립 3년 만에 첫 차량 판매를 시작했다. 가격이 44만8000위안(약 7380만원)으로 테슬라의 SUV 모델X의 절반 수준이다.

각국 정부의 지원 정책도 앞다퉈 나왔다. 중국은 2019년부터 전기차 의무판매제도를 시행한다. 미국은 최근 미국 상하원을 통과한 세제개편안에 7500달러의 연방 전기차 보조금 조항을 넣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2040년, 독일은 2030년, 노르웨이와 네덜란드가 2025년부터 각각 전기차만 시판하기로 확정했다. 일본은 2030년까지 친환경차 비중을 50% 이상 끌어올린다고 밝혔다. 도요타는 최근 2025년까지 내연기관 차종을 ‘제로’(0)로 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수십 년 내 최악’이란 수식어가 붙은 지진·허리케인·산불 등으로 1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재해가 이어졌다.

지진의 위협이 컸다. 9월 7일 멕시코에서 8.1의 강진이 발생, 약 1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100년 내 멕시코를 강타한 지진 중 가장 셌다. 같은 달 19일 7.1 강진이 다시 발생했다. 1985년 1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멕시코 대지진이 일어난 그날이었다. 사망자는 약 300명, 한국인도 한 명 포함됐다. 11월 12일엔 이란과 이라크 접경지대에서 규모 7.3의 강진이 발생했다. 이란에서만 약 530명이 숨졌고, 양국 부상자는 8000명이 넘었다.

대형 허리케인이 비극의 바통을 이었다. 8월 25일 미 텍사스주 남부에 ‘하비(4등급)’가, 9월 8일 플로리다주에 ‘어마(5등급)’가 각각 상륙했다. 사망자가 150명을 넘었다.

화마도 무섭게 일어났다. 10월 8일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에서, 12월 4일엔 로스앤젤레스 북서쪽 벤추라에서 산불이 2주 이상 계속됐다. 6월 14일 영국 런던의 24층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 최소 17명이 숨졌다. 같은 달 18일엔 포르투갈 중부에서 산불이 발생, 60여 명이 숨졌다. ‘화산 공포’도 불거졌다. 1963년 폭발로 1700여 명의 사망자를 낸 인도네시아 아궁 화산이 11월 25일 분화를 시작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 ‘침묵을 깬 사람들’(The Silence Breakers)을 올해의 인물(Person of the Year)로 선정했다. 이들은 올해 소셜미디어를 타고 전 세계로 확산된 성폭력 피해 고발 운동, 이른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캠페인에 동참한 이들이다.

애슐리 주드는 지난 10월 뉴욕타임스(NYT) 회견에서 20년 전 할리우드 거물 영화제작자인 하비 웨인스타인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영화배우 앨리사 밀라노가 ‘미투(#MeToo)’ 해시태그 공유를 제안하면서 불이 붙었다. 연말까지 세계 80여 개국으로 확산됐다.

곳곳에서 고발이 쏟아졌다. 우버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수전 파울러는 상사의 성희롱·성차별 문제를 수차례 문제 삼았지만 경영진이 이를 무시했다고 폭로했다. 공동 창업자인 트래비스 칼라닉 CEO(최고경영자)는 물러나야 했다. 할리우드 배우 스페이시, 유명 방송인 로즈와 라우어 모두 방송에서 하차했다.

정치권도 뒤흔들었다. 미국 하원에서 현역 최다선(27선)으로 꼽히는 민주당의 존 코니어스 의원이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같은 당 알 프란켄 상원의원(미네소타)도 성추행 의혹으로 오는 1월2일 사임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에드워드 펠센털 타임 편집장은 “지난 수십 년간 본 것 가운데 가장 빠른 사회변화”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