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마다 '현금 할인' 유혹…징역형 가능한 '불법'

서울 한 지하상가 옷가게에 현금과 카드 결제 가격이 각각 다르게 표시돼 있다. /사진=한민선기자

# 최근 치과에서 임플란트 시술을 받은 윤모씨(60)는 현금으로 결제하면 100여만원을 할인해준다는 제안을 받았다. 병원이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속셈인 것을 알지만 수백만원이 넘는 치료비가 부담스러웠던 윤씨는 결국 현금결제를 선택했다.

# 서울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매장마다 가격표 옆에 '현금가'라고 적혀 있다. 외국인 손님을 위해 영어로 'CASH ONLY'(캐시온리)라고 쓴 문구도 보인다. "카드로 결제되냐"고 묻자 옷 가계 주인은 처음 제시한 가격에서 2000원을 올려받는다. "카드 수수료 때문에 더 받아야 해요. 그대로 받으면 남는 게 없어요."


일명 '현금 할인' 영업방식은 불법이지만 업종을 불문하고 만연해있다. 가게 계산대 앞에 사업자 계좌번호가 적혀있는 경우도 있다. 현금을 잘 가지고 다니지 않는 요즘 소비자 추세에 맞춰 스마트폰뱅킹으로 계좌이체를 받고 할인해주기 위해서다.

카드 단말기가 있는 가맹점인데도 현금 결제에 혜택을 제공하는 행위는 여신전문금융법 위반이다. 제19조1항은 "신용카드 가맹점은 신용카드로 거래한다는 이유로 신용카드 결제를 거절하거나 신용카드 회원을 불리하게 대우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위반할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가맹점들이 현금 결제를 유도하는 이유는 우선 수수료 부담 때문이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평균가맹점수수료율은 신용카드 2.09%(2016년 기준), 직불카드 1.6% 수준이다. 연 매출 3억원 이하 사업자는 수수료가 1% 아래로 내려가기도 한다.


세금 문제도 있다. 현금 결제를 유도하고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소득신고를 하지 않고 세금을 덜 내기 위해서다. 소득세법에 따르면 현금영수증 의무발행업종 사업자는 10만원 이상 거래할때 요청이 없어도 무조건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야 한다.

울산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이모씨(23)는 "(할인으로 현금 결제를 유도하는 영업이) 불법인 것은 알아도 (소득신고를 하지 않고) 세금을 덜 낼 수 있으니 현금을 내면 깎아준다"며 "손님들도 현금을 내면서 할인받으면 으레 현금영수증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비자들도 이런 배경을 알고 있지만 굳이 문제제기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소규모 옷가게를 자주 이용한다는 이모씨(25)는 "현금만 준비하면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불법이더라도 서로 이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물론 취재진이 만난 다른 사업자들도 관련 단속을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카드 결제 차별행위를 단속하는 금융감독원이나 여신금융협회는 신고센터를 운영하지만 실제 신고 건수가 많지 않고 현실적으로 일일이 카드결제 차별행위를 막기도 어렵다.

탈세 행위를 단속하는 일선 세무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서울 반포세무서 관계자는 "신고를 받으면 단속을 나가긴 하지만 세금을 회피하려 했다는 목적을 입증 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단속인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신고가 들어오거나 매출을 의도적으로 크게 누락한 혐의가 보이면 파악에 나서는 수준이다. 실제 과태료 부과 등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많지 않다.

세금 탈루 등을 막고 카드 소비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세무당국과 금융당국 간 신고접수를 긴밀히 공유하거나 단속 과정을 공조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지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현금 할인은 단순히 카드수수료나 부가세 문제가 아니라 소득세, 법인세까지 영향을 미친다"며 "조세포탈에 가까운 행위"라고 지적했다. 카드 사용으로 높아진 납세 투명성을 저해하는 행위로 법 취지를 살릴 수 있게 관계 당국이 현금 할인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업종을 중심으로 집중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