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가 춤을 췄다’ 디젤게이트 폭스바겐이 살아난 비결!

2015년 9월, 80년 역사의 독일 완성차업체 폭스바겐그룹은 회사 역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닥뜨린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에 의해 디젤 차량의 배기가스 배출 성능 조작 사실이 드러났다. 일명 '디젤게이트'다.

폭스바겐은 차량의 성능검사가 진행될 때만 배기가스 저감장치가 작동해 환경기준을 충족하도록 만들었다. 실제 운행에서는 기준의 40배가 넘는 유독가스를 내뿜었다. 이렇게 조작된 차량 1100만대가 세계 곳곳으로 팔려 나갔다. 폭스바겐그룹의 속임수가 밝혀진 직후 폭스바겐 주가는 반토막이 났다. 2015년 4월 10일 253.20유로로 정점을 찍었던 주가는 불과 6개월 후 100유로 밑으로 떨어진다. 배상금과 벌금 규모가 최대 800억달러(약 85조원)에 달할 수 있다는 우울한 분석도 나왔다. 마르틴 빈테르코른 당시 CEO(최고경영자)가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회사가 예전의 명성을 되찾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기우였다. 2년여가 지난 지금 폭스바겐은 위기를 완전히 극복했다. 주가가 디젤게이트 발생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상승률만 따지면 BMW나 다임러그룹 등 경쟁사를 이겼다. 지난해 자동차 판매량도 일본의 토요타자동차나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에 앞섰다. 폭스바겐그룹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아우디와 포르쉐를 포함하는 산하 12개 브랜드의 지난해 차량 판매가 총 1074만1500대로 전년 대비 4.3% 증가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국 시장에서는 차량 판매가 10~20% 급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역사상 최대 위기에도 폭스바겐 재무제표에는 회사가 어려움을 겪었다는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호세 아수멘디 JP모건 연구원도 "폭스바겐이 디젤게이트를 겪었는지 모르겠다"면서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진정한 전화위복


디젤게이트 발생 전 폭스바겐은 덩치는 컸지만 실속은 없는 조직이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매출은 500억유로(약 65조원) 증가했지만, 이익률은 12%에서 6%로 줄었다. 승용차 부문 이익률은 특히 2%에도 못 미쳤다. 3000만원짜리 자동차 한 대 팔아야 60만원가량 남았다. 이런 상황에서 디젤게이트로 수십조 원을 보상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회사 일각에서는 서둘러 자산을 팔아 손해를 메워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폭스바겐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다. 오랫동안 미뤄왔던 혁신을 위한 '촉매'로 사용한 것이다. 벤테르코른에 이어 폭스바겐 CEO에 오른 마티아스 뮐러는 디젤게이트에 대해 "물론 큰 문제였고 돈도 많이 들었다"면서도 "하지만 그것은 과거라면 드러나지 않았을 문제를 찾아낼 수 있는 촉진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폭스바겐은 우선 비용을 줄였다. 경영 효율화로 불필요한 지출을 없앴다. 원가 절감을 위해 차량 부품을 단순화하고 지역별 판매 전략을 재구성했다. 기존에는 하나의 모델에 적용되는 운전대 종류만 100여 개에 이를 정도로 복잡해 재고 관리 등에 큰 비용이 낭비됐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2015년 매출의 6.8%에 달하던 자본지출(이익 창출을 위한 비용)이 지난해 5.9%로 낮아졌다. 올해는 4.8%로 줄어들 전망이다.

결국 폭스바겐은 디젤게이트로 인한 손해를 별다른 충격 없이 넘겼다. 지금까지 250억달러(약 26조6500억원)를 보상금과 벌금으로 지급했지만, 현금성 자산은 2015년 중반 215억달러에서 지난해 말 254억유로(약 33조2900억원)로 증가했다. FT는 "폭스바겐의 경영 효율화는 수익률 증가와 추가적인 현금 확보, 신용등급 향상 등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일으켰다"고 평가했다.

◆코끼리가 춤을 췄다

FT는 폭스바겐의 체질 개선을 "코끼리가 춤을 추도록 만드는 작업"이었다고 표현했다. 폭스바겐이 2016년 기준 62만여명의 직원을 가진, 매출 2170억유로(283조5000억원)의 거대기업이었기 때문이다. 해외 진출 지역도 170개에 달했다. 폭스바겐의 최고의사결정 기구인 감독이사회도 노동조합 대표들과 독일 니더작센 주정부, 피에히-포르쉐 가문 등으로 복잡하게 구성됐다. 신속한 의사결정이 어려운 구조였다. 미국 금융사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의 자회사이자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폭스바겐 경영 점수를 최하로 평가했다. 경영진의 독립성 부족이 가장 큰 이유였다.

1972년 아우디에 입사해 40년 넘게 폭스바겐에서 일하다 구원투수로 등판한 뮐러 CEO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해 지난 2016년 향후 5년간 3만명 감원 계획을 끌어냈다. 이를 통해 약 37억유로(4조8000억원)가량의 고정비 지출이 줄어들 전망이다. 폭스바겐 60만 근로자를 대표하는 베른트 오스텔로 근로자위원회 위원장, 한스 디터 포에치 폭스바겐그룹 이사회 회장, 헤르베르트 디스 폭스바겐 승용차부문 CEO, 폭스바겐 프랭크 위터 CFO(최고재무책임자) 등도 뮐러와 함께 폭스바겐 개혁을 이끈 인물이다.

뮐러 CEO가 지난해 9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개한 '로드맵 E'는 폭스바겐의 변화를 보여준다. 2025년까지 전기차에 200억유로(26조원), 자율주행과 차량공유 기술에 140억유로(18조3000억원)를 각각 투자해 전기차 50종을 출시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한번 완충으로 500㎞를 달릴 수 있는 아우디의 전기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는 올해 말 출시돼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모델X와 경쟁할 전망이다. 포르쉐의 미션E는 2019년 출시될 예정이다. 폭스바겐그룹의 저가 브랜드 세아트와 스코다도 올해 말 독자적인 전기차 모델을 선보일 계획이다.

FT는 "향후 폭스바겐의 가장 큰 도전은 전기차 시대에도 디젤게이트에서 얻은 교훈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