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무역 갈등 격화에 미중 다국적기업들 충격파

23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산 태양관전지판과 한국산 세탁기 등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문서를 들어보이고<br> 있다. /AFPBBNews=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 태양광전지판과 세탁기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하며 무역전쟁의 서막을 알렸다. 한국 전자업계의 피해가 불가피하지만, 실질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조치라는 게 외신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중국 정부도 강력 반발하면서 세계 경제 2강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가운데 낀 다국적기업의 충격도 커지는 상황이다.

# “미국과 중국, 충돌 불가피한 단계에 들어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세이프가드 행정명령에 정식으로 서명하면서 "값싼 수입품으로부터 미국 제조업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조치로) 미국 소비자 혜택이 늘고,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세이프가드를 발동한 것은 2002년 이후 16년 만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상대로 추가 압박도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미 무역대표부(USTR)에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와 기술 강제 이전 등에 대해 조사를 명령했으며, 현재 1차 조사가 진행 중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소식통을 인용해 “USTR의 조사 결과가 이달 30일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 전에 공개될 수 있다”고 전했다.

앞서 USTR은 의회에 제출한 새해 첫 연례보고서에서 “미국이 중국의 WTO 가입을 지원한 것은 실수였다”며 “중국은 시장경제에서 더 멀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는 “WTO는 원활한 교역과 시장경제를 위한 클럽으로 인식돼왔지만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그 기반을 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타협점을 찾기보다 강경하게 나설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양국은 충돌이 불가피한 단계로 들어섰다”고 분석했다.


# G2 중간에 낀 기업 피해 커져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심화하면서 애꿎은 글로벌 기업만 중간에서 긴장하고 있다. 관계 악화로 인한 피해 사례도 발생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그룹의 금융자회사 앤트파이낸셜은 미국 머니그램 인수를 추진했지만 미국 정부의 승인을 얻지 못했다. 거대한 자국 시장을 바탕으로 세계 3위 스마트폰 업체로 성장한 화웨이는 AT&T와 손잡고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설 계획이었지만, 결국 포기했다. AT&T가 갑자기 계획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두 사례 모두 트럼프 행정부의 반중(反中) 정서 때문에 벌어졌다는 게 외신의 분석이다.

중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은 사정이 더욱 열악하다. 악명 높은 중국 정부의 외국 기업 탄압이 강도를 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정하던 글로벌 호텔 운영업체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은 최근 중국 웹사이트가 폐쇄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자사 VIP 회원을 대상으로 보낸 설문 조사에서 대만과 홍콩, 마카오, 티베트 등을 국가로 표기한 것이 문제가 됐다. 중국 당국의 항의는 물론 중국인들의 불매 운동에도 시달렸다. 비슷한 문제로 델타항공, 메드트로닉, 자라 등도 중국 정부와 중국인들에 사죄해야 했다. 전형적인 중국식 외국기업 다스리기 사례로 꼽힌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외국 기업에도 공산당 조직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이미 중국 내 외국 기업의 70%에 당 조직이 들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외국 기업에 대한 중국 공산당 정부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중국 정부 통제에 맞추지 않으면 중국 시장 퇴출을 각오해야 한다.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는 중국에서 사용이 금지돼 있다. 애플은 중국 정부의 방침에 맞춰 애플스토어에서 가상사설망(VPN) 앱을 모두 삭제했다. 사용자들이 중국 정부의 인터넷 감시시스템 ‘만리방화벽’을 우회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조치였다.

WSJ은 "중국의 과도한 민족주의는 현지에 진출한 외국 기업에게 큰 위험요소"라면서 "중국 정부의 지시에 불복하면 퇴출 돼야 하는 상황에서 외국 기업들은 정치적으로도 민감해지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