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과학자 꿈 접었지만 과학대중화 꿈 이뤄가죠"

“원래 생각했던 만큼 했습니다. 욕심을 냈던 정도는 아닙니다.”

‘판단 유보’로 보이는 모호한 대답, 서울 삼성동 인터파크 사무실에서 만난 이기형 인터파크홀딩스 회장은 카오스재단의 지난 3년을 한마디로 이렇게 평가했다.


카오스는 이 회장이 2014년 11월, 약 10억 원의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공익과학재단이다. 간판인 카오스(Knowledge Awakening On Stage)는 ‘무대 위에서 깨어난 지식’을 뜻한다. 그동안 과학 관련 강연, 지식콘서트 등을 통해 기초과학을 전파하고 과학문화를 확산하는 사업을 펼쳐왔다.

이기형 인터파크홀딩스 회장/사진=인터파크홀딩스

이 회장의 어릴 적 장래희망은 천체망원경으로 달·화성을 관찰하는 과학자였다. 서울대 천문학부에 입학해 꿈을 키웠지만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아 접어야만 했다. 생계를 위해 취업 전선에 나선 그는 1988년 삼성전관(삼성 SDI 전신)에 입사한 후 데이콤(1991년)을 거쳐 34세가 되던 1997년 지금의 전자상거래업체인 인터파크를 창업하며 본격적인 기업가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못다 이룬 꿈에 대한 미련이 계속 남았다. 카오스를 시작하게 된 배경이 이랬다.

◇신고리·비트코인 논란 중심에 선 ‘과학’…저변 확대는 ‘필수’=이 회장은 10회에 걸쳐 진행된 대규모 과학콘서트에 빠지지 않고 일반 객석에 앉아 강연을 경청했다. 그만큼 애착이 많다. 카오스는 100회가 넘는 강연을 진행했고, 오프라인 강연에 참석한 청중 수는 2만5000명이 넘는다. 청중은 20대 대학생부터 중장년층까지 세대를 넘나든다.


“카오스 강연의 대부분이 무료지만 일부는 시험 삼아 유료티켓을 팔아본 적도 있어요. 1000석이 넘는 공연장이 가득 들어찰 정도로 호응도가 높았죠. 그 얘기는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과학을 문화로 즐기는 그 정도의 여력이 생겨났다는 의미일 겁니다. 객석엔 60~70세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많이 계세요. 만나 뵌 어떤 분은 강연 후 울먹이면서 ‘잘 모르지만 용기 내어 왔다.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뀐 것을 느낀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과학 문화 저변을 넓히는 노력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는 게 이 회장의 견해다. 신고리 5·6호기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공방,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에 대한 논란 등 최근 불거진 사회 문제들이 과학과 결부된 탓이다.

“가령, 특정 DNA(유전자)를 편집해 질병을 치료하는 유전자 가위의 경우, 불량 유전자를 제거한 ‘맞춤형 아기’ 탄생에 대한 찬·반 논란처럼 이 기술을 의료현장에 어디까지 적용할 것인가를 놓고 우리 스스로가 어떻게 할 것인지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결정해야 합니다.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기술이 이런 논의의 장에 불려올 겁니다. 보다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한 과학적 논쟁 접근법이 중요합니다.”

◇“세금 피하려 편법 쓴다는 야단도 많이 맞아”=이 회장은 카오스재단을 이끌면서 겪어야 했던 고충도 어렵게 털어놨다. 세금을 피하기 위한 편법이란 외부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선 일단 기업이 재단을 한다고 하면 나쁜 짓을 한다는 선입견을 깔고 보는 경향이 있죠. 실제로 옛날에 공익재단을 악용한 편법적인 부의 상속 등의 사례가 많았고, 관련한 규제도 많이 생겨서 기업이 재단을 운영한다고 하면 바라보는 시선들이 결코 곱지 않아요. 이 때문에 억울하게 야단도 많이 맞았죠.”

재단의 공익 사업을 인터파크 주요 사업의 마케팅 용도로 활용한다고 나무라는 사람도 있었다. “막연하게 재단을 통해 좋은 일을 하겠다? 절대 이뤄지지 않을 겁니다. 공익 사업을 통해 이 사회를 이렇게 바꿔보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섰다면 일반 사업보다 더 치열할 정도의 노력이 따라줘야 합니다. 이런 모습이 기존 비즈니스를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보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디까지나 그런 차원입니다. 우리 사업과 연관을 지어 뭔가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끝으로 그에게 카오스를 통해 원래 이루고자 했던, 욕심을 냈던 정도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미국과 유럽에선 일상 어디에서든 과학을 주제로 토론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죠. 아직 우리에겐 먼 얘기 같지만, 2000년대 초중반 인문학 열풍이 뜨거울 때를 떠올려 보세요. 인문학 강연이 넘쳐났고, 사람들 대화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갔죠. 그때보다 우리는 지금 확실히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 정도가 제가 생각하는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