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에도 무역전쟁 전운…'환율전쟁' 일촉즉발

국제 외환시장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포한 무역전쟁의 전운이 드리웠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반무역 공세가 달러 약세와 맞물려 환율전쟁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환율전쟁은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통화 가치 절하 경쟁을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 10%의 관세를 물리는 방안을 확정했다. 미국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상대국인 캐나다와 멕시코는 새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됐다. 트럼프는 다른 나라에도 예외를 인정할 수 있는 여지를 뒀지만 그가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전쟁을 선포했다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무역전쟁은 보복의 악순환을 일으키기 때문에 승자가 있을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역사가 보여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무역 보복 조치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게 바로 환율 통제다.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춰 수출품 가격을 낮추는 식이다.

환율전쟁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웃 나라를 거지로 만든다(Beggar Thy Neighbor)는 점에서 무역전쟁과 닮았다. 보복의 악순환 속에 결국 승자 없는 게임이 된다는 점도 그렇다. 환율전쟁은 무역전쟁을 격화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더욱이 통화 가치 절하는 수입품 가격을 높여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 자본이탈을 촉발해 제 발등을 찍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 환위험 때문에 외국인의 투자도 줄 수 있다.


트럼프의 반무역 공세에 주요국이 보복을 벼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두드러진 달러 약세가 환율전쟁의 좋은 빌미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6개 주요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2016년 말 고점에서 지난달 저점까지 약 14% 떨어졌다. 반면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지난해 1월 이후 18% 올랐고 엔화 가격은 10% 뛰었다. 원화 가치도 12% 상승했다. 블룸버그가 꼽은 16개 주요 통화 가운데 같은 기간 달러에 약세를 보인 통화는 단 하나도 없다.

환율전쟁의 조짐은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이 올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약한 달러는 무역, 기회와 관련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좋다"고 말한 게 결정적이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이튿날 환율전쟁을 자제하기로 한 주요국의 합의를 상기시키며 므누신 장관의 발언을 에둘러 비판했다.

ECB는 지난달 공개된 1월 통화정책회의 의사록에서도 달러 약세와 이에 따른 환율전쟁 가능성을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유럽연합(EU)이 트럼프 대통령의 수입산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 결정에 강력한 보복을 예고한 만큼 ECB의 행보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블룸버그는 환율전쟁이 닥치려 한다며 투자자들에게 일본은행(BOJ)의 깜짝 행보에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BOJ는 지난 수년간 경기부양을 위해 엔화 약세 정책을 펼쳤다. 자산을 매입해 돈을 푸는 양적완화가 대표적이다. 덕분에 일본 기업들의 실적은 사상 최대 수준이 됐고 주식시장도 수십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달아올랐다. 달러 약세는 최근 엔화를 강세로 돌려놓으면서 그간의 성과를 위협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가 최근 통화부양책을 거둬들이는 출구전략을 시사했지만 트럼프의 무역정책이 BOJ의 셈법을 바꿀 수 있다고 봤다. 통신은 구로다 총재가 전에도 시장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며 2014년 10월 양적완화 규모를 확대한 걸 사례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