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電 확대·유지" 31.6% vs 54% vs 69.3%…혼란 키우는 여론조사

한국원자력학회,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 과학기술포럼은 16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2018 원자력발전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사진=권혜민 기자

31.6%(현대경제연구원 코스모리서치센터) vs 54%(한국갤럽) vs 69.3%(한국리서치)

최근 연이어 진행된 여론조사 결과, 원자력발전(원전)의 비중을 '확대 또는 유지'해야 한다는 답변 비율이다. 세 차례의 여론조사가 각각 5월30일~6월7일, 6월26일~6월28일, 8월 6~7일 불과 두 달 사이 비슷한 기간에 진행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간극이 크다. 한국원자력학회 의뢰를 받아 진행된 한국리서치 조사와 현대경제연구원의 경우 완전히 상반된 수치가 나왔다.


세 여론조사 모두 '탈(脫)원전·친환경'으로 대표되는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 시행 1년이 지난 시점 실시됐다. 국민 여론을 가늠해 볼 기회였지만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오면서 혼란은 더욱 커졌다.

이런 차이가 나타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조사 설계 방식과 진행 과정에서의 차이 때문일 것으로 판단한다. 이들에 따르면 여론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질문 내용 △표본의 대표성 △조사 시점 크게 3가지다.

이 중 표본의 대표성과 관련해선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단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세 여론조사는 1000명 내외의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전화면접 조사를 실시했다. 모두 지역별, 성별, 연령별 비례 할당 추출 방식을 따랐고,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3.1%였다.


질문 내용과 문항 구성엔 차이가 있었다. 한국갤럽의 경우 '귀하는 우리나라 원자력발전 정책이 다음 중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그 결과 △확대 14% △축소 32% △현재 수준 유지 40%라고 답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귀하는 앞으로 원전(원자력 발전) 비중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축소 67.2% △유지 22.8% △확대 8.8%로 답변했다.

다만 현대경제연구원은 원전 비중에 대한 질문 전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원전 사고 위험이나 미세먼지, 온실가스 배출과 같이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환경을 위협하는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며 각각의 사회적 비용을 먼저 물었다. 원전의 장점이나 친환경 발전의 한계 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한국리서치의 경우 '현재 원자력발전은 우리나라 전기생산의 약 30% 정도를 담당합니다. 귀하께서는 앞으로 원자력발전이 차지하는 전기생산 비중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했다. 질문 외에 '현재 원자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에 대한 정보를 추가로 제공한 것이다. 그 결과 △늘려야한다 37.7% △유지해야한다 31.6% △줄여야한다 28.9%로 나타났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여론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척도가 되는 설문지인데, 원전 확대·축소에 대한 여부를 묻는 질문과 상관 없는 사족을 붙이는 것은 사실상 유도질문이 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결과 값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조사 시점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조사 당시 발생한 이벤트에 따라 여론이 좌우될 수 있어서다. 실제로 공익법인 에너지전환포럼은 한국리서치의 조사 결과에 대해 "폭염이 최고조에 달해 전력부족 우려가 집중 보도되던 시기 실시됐다는 점이 조사결과의 일시적인 왜곡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일각에서 전력부족 상황을 '탈원전'과 연결지었던 때 조사가 실시돼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여론조사에 따라 상반된 결과가 나타나면서 '탈원전' 논란에 대한 갈등만 키우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우려한다. 환경단체나 원전사업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합리적인 여론조사를 정부 차원에서 진행해 여론 형성을 도울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왔다.

은재호 한국갈등학회 회장(한국행정연구원 대외부원장)은 "일시적인 의견을 묻기보단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같이 중립적인 정부기관에서 불특정 다수 보다는 패널을 상대로 정기 조사를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보다 안정적 결과를 얻어 정책 결정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