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만 가구에 돌보미 2.3만명…'돌봄 공백'에 알바 뽑는 워킹맘

서울 서대문구에서 5살 딸을 키우는 워킹맘 이현아씨(34)는 얼마전 아이를 봐주던 친정엄마가 며칠 지방에 내려가자 눈앞이 깜깜해졌다. 퇴근 후 집까지 이동하다 보면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가기 힘들었다. 그주 갑자기 야근이 늘어난 것도 문제였다. 발을 동동 구르는 이씨에게 직장동료는 '시간제 돌봄' 모바일 앱 서비스를 소개해줬다. 2시간에 2만8000원을 주고 하원 도우미를 구하고나서야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맞벌이 가정의 아이가 하원·하교 후 혼자 있는 '돌봄 공백'이 해소되지 못하면서 워킹맘들의 한숨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일부 엄마들은 모바일 앱을 통해 시급 1만원 대의 이른바 '놀이쌤'을 구하기도 한다. 대학생과 전·현직 유치원 교사들이 하원·하교 시간 아이를 잠시 맡아 그림 그리기나 만들기를 하며 놀아주고 시급을 받는다.


시급 1만원 놀이쌤에 기대야 하는 엄마들의 현실은 정부가 좀처럼 채우지 못하고 있는 '돌봄 공백' 탓이 크다. 정부가 2007년부터 시행중인 아이돌봄서비스(만 12세 이하 아동이 있는 맞벌이 가정 등을 방문해 아이를 보호하는 서비스)는 민간업체 보다 저렴한 비용(시간당 7800원)에 아이를 돌봐줘 인기가 높다. 2일 여성가족부(여가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아이돌봄서비스를 이용한 가구는 2014년 5만4362가구에서 2017년 6만3546가구로 꾸준히 늘었다.

그러나 돌보미 숫자가 부족한 탓에 신청해도 대기하는 경우가 많아 일부 부모들 사이에서는 '돌봄 로또'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난해에만 신청하고도 이용하지 못한 가구가 1만8000가구나 됐다. 이에 여가부가 지난달 31일 돌보미 숫자를 기존 2만3000명에서 3만명까지 확대하고 서비스 지원대상을 9만 가구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만 12세 이하 자녀를 가진 맞벌이 가구 수가 전국 151만6000가구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공급이 수요에 크게 못 미친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방과 후 이용할 수 있는 초등 돌봄교실도 2015년 전국 1만2380실(23만9798명)에서 2016년 1만1920실(23만8480명)로 오히려 460실 줄었다가, 지난해 1만1980실(24만5303명)로 겨우 회복했다. 교육부는 내년까지 방과 후 초등학교 돌봄교실을 700개 늘리기 위해 210억원을 투입할 방침이지만 맞벌이 가정에는 '그림의 떡'이다. 돌봄교실 운영시간이 대개 오후 5~6시 정도까지여서 맞벌이 가정은 활용하기 쉽지 않은 까닭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생 아들을 키우는 워킹맘 김모씨(41)는 "돌봄교실 마감시간이 딱 엄마들 퇴근시간이라 돌봄교실은 꿈도 못꾼다"며 "아이가 오후 2시 하교 하면 2~3개 학원 뺑뺑이를 돌려 겨우 퇴근 후 집 근처에서 만날 시간을 맞추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50대 돌봄교사 권모씨도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이 아이를 조금 더 봐달라고 읍소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아이를 집에 데려와 재우면서 맡아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워킹맘들은 민간업체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한 놀이쌤 운영업체 대표는 "엄마들이 저녁 5~9시 놀이쌤에게 아이를 가장 많이 맡긴다"며 "퇴근 후 2~3시간 동안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엄마들이 예약을 요청한 시간을 보면 전날 밤 10~11시가 많은데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 등이 갑자기 아이를 봐줄 수 없어 급히 놀이쌤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실적인 돌봄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직장 내 유연·탄력근무제를 활성화해야하고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사용자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며 "방과 후 교실, 전일제 학교 등 교육기관에 돌봄 기능을 더하고 동시에 지역 내 돌봄교실, 아동복지센터 등 지역사회 돌봄체계를 구축하는 투트랙 방식으로 교육 환경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