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적은 동지? 中, 왜 베네수엘라의 손 잡았나

14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를 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중국이 사상 초유의 경제 위기를 겪는 베네수엘라가 내민 손을 잡았다. 베네수엘라는 미국 주도의 국제통화기금(IMF) 대신 내정 간섭 우려가 없는 자금을 융통하고, 중국은 싼 값에 석유를 확보하면서 미국의 에너지 패권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15일 로이터통신과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 외무부는 전날 시진핑 국가주석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베이징에서 만나 베네수엘라의 개발 지원, 에너지 분야 협력 등을 약속하고, 중국 주도 광역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에 협력한다는 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 석유천연가스공사는 베네수엘라 국영석유기업 PDVSA와의 합작법인인 시노벤사(Sinovensa) 지분 9.9%를 추가 매입하기로 했다. 이후 중국 가스공사의 지분은 49.9%가 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PDVSA 관계자는 "석유 조달 및 관련 서비스는 중국 기업이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또 합작법인 페트로주마노(Petrozumano)에 1억8400만달러를 추가 투입해 베네수엘라 오리노코 유전지대 아야쿠초 제 6구역에 유정 300개를 개발하기로 했다.


이처럼 중국이 베네수엘라에 경제 지원에 나서는 가장 큰 이유는 '원유'이다. 중국은 앞서 세계 석유 매장량 1위 국가인 베네수엘라에 차관을 지원하면서 원유로 상환할 수 있게 했는데, 이 경우 국제유가보다 싼 값에 석유를 공급받을 수 있다. 이는 중국이 무역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에 대한 원유 의존도를 낮추는 길이기도 하다. 현재 중국은 미국산 원유의 최대 수입국이다.

베네수엘라 경제 분석기관 에코애널리티카에 따르면 중국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베네수엘라에 700억달러 규모 차관을 제공했고, 이중 대부분을 원유로 회수했다. 올해 4월 로이터는 PDVSA 무역 문건을 분석한 결과, 베네수엘라가 일 석유 생산량의 28%에 달하는 37만5000배럴을 중국 채무 상환에 써야 한다고 보도했다.

이번 MOU와 관련해 베네수엘라 내에서는 '채무 함정 외교'(debt trap diplomacy)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중국이 주변국에 자금을 빌려주고 막대한 이권을 챙긴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스리랑카는 중국에 채무를 상환하지 못해 함반토타(Hambantota) 항만 운영권을 99년 간 내어줬다.


디에고 아리아 전 유엔주재 베네수엘라 대사는 캐나다 CBC뉴스에 "베네수엘라는 이미 석유와 콜탄(스마트폰 제조에 사용되는 광물) 채굴에 있어 많은 이권을 중국에 내줬다"면서 "항만이 다음 차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양국의 정상회담 뒤 공개된 내용에 베네수엘라에 필요한 긴급자금 지원은 담기지 않았다. 회담에 앞서 13일 시몬 베르파 베네수엘라 재무장관은 블룸버그통신에 중국이 현금이나 원유로 상환 가능한 50억달러(약 5조6000억원) 신규 차관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중국 정부나 관영매체 어디도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최근 신흥국 자금 지원에 대한 비판 여론에 시달린 중국 당국이 의도적으로 비공개한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베네수엘라는 2014년 유가 폭락으로 경제 위기를 맞았고, 미국의 경제 제재 등이 이어지며 화폐가치 추락과 물가 폭등을 겪고 있다. 물가상승률은 올해만 100만%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