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인하, 정유사는 딜레마에 빠졌다

사진=이기범 기자

정부가 10년 만에 유류세를 15% 내리기로 하자 정유업계가 기민하게 업계 동향을 살피기 시작했다.

내림 폭이 당초 예상되던 10%에서 5%p 더 커지면서 민생을 살리기 위한 정부의 양보 의지가 확실해진 터라 이를 간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세금을 내려도 원유 수급 가격을 낮출 순 없다. 하지만 소비자 소매 가격이 그만큼 내리지 않을 경우 중간에서 이익을 가로챘다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24일 기획재정부가 유류세를 내달 6일부터 15%를 인하하기로 하자 정유업계는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실제 기름값이 떨어져 (정부의 기대처럼) 소비가 늘면 장기적으로 정유사 매출도 확대될 수 있다"며 "다만 추후 국제유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면 세금 인하효과가 상대적으로 반감되어서 기업 입장에서는 역마진을 우려할 만큼 가격조정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유류세 인하는 6개월 한시적이다. 휘발유와 경유, LPG(액화천연가스)에 붙는 세금을 리터당 각각 123원, 87원, 30원 가량 내린다.

일단 휘발유 소비자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60% 안팎인데 이 세금을 15% 내리면 기름값을 잡는 이른바 상승억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정유사 관계자는 "세금 인하를 발판으로 추후 원유 가격이 하락하면 소비 진작 효과는 분명할 것"이라며 "이 경우 선순환 효과에 따라 업계의 매출도 자연스럽게 확대될 여지가 있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세금 인하가 정유사들의 매매 마진율을 높일 직접적 요인은 아니다. 기름값은 정유사의 원유 수급가와 세금, 주유소 유통비용 및 마진으로 구성되는데 유류세는 원유 수급가와는 무관해서다.

정유사는 수급가는 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에 좌우되는데 이는 대체로 두바이유 국제유가를 추종한다. 정유사의 영업이익률은 국제유가를 기준으로 한 소매가와의 차이를 통해 약 5% 안팎으로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업계는 유류세 인하에도 불구하고 국제시장에서 기름값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경우를 우려한다. 싱가포르 가격과 국제유가 등락 폭만큼 원유수급가를 조정하는 정유사가 추후 국제유가 상승세에 속도가 더 붙으면 유류세 인하효과 이상으로 수급가 상승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08년 정부는 금융위기가 발생해 소비가 얼어붙자 유류세를 10% 인하해 경기 활성화를 유도했는데 이후에도 기름값이 뛰면서 정유사들은 각각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의 적자를 감수해야 했다.

국내 A 정유사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최종 소비자에 기름을 파는 주유소들이 책정할 마진에 체감 가격이 좌우될 것"이라며 "최근 52시간 근무제와 최저임금 인상으로 영세 주유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들이 당장 판매가격을 내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