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근로계약 연장 기대할 상황이어도 해고할 수 있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

기간제 근로자가 근로계약이 연장될 것으로 기대할만한 상황이었더라도 합리적 이유가 있다면 회사가 근로계약 갱신을 거절해도 부당해고가 아니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14부(부장판사 김정중)는 KDB산업은행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피고 보조참가인 A씨에 대한 근로관계 종료 통보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는 판정을 취소하라고 낸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근로관계 종료 통보는 합리적 이유가 있는 근로계약 갱신의 거절로서 정당하다"며 "이를 부당해고로 본 중노위 판정은 위법하다"고 밝혔다.


산은은 2012년 4월 신규 점포 개설 업무 급증으로 건축사 자격을 소지한 A씨를 같은 해 7월에 채용했다. 산은과 A씨와의 근로계약 기간은 6개월이었고 A씨가 맡은 업무는 점포 신설 및 이전, 리모델링 등이었다.

산은은 A씨와의 근로계약을 4차례 갱신했으나 2016년 말 근로계약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노위는 당시 산은의 근로계약 갱신거절이 '부당해고'라고 판단했고 이에 불복한 산은이 소송을 냈다.

산은은 "A씨가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주된 업무인 '점포 신설' 업무가 소멸했고 A씨도 점포 개폐 상황이나 인력수요 등 사정으로 재계약이 거절될 수 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며 "A씨에게는 근로계약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산은에서는 2013년 이후 신규 점포 개설이 없었고 2016년부터는 82개 점포 중 5개소의 폐쇄 등 점포 축소가 이어졌다.


산은은 또 "A씨의 주된 업무가 이미 소멸한 점, A씨가 다른 근로자들과 잦은 갈등을 빚은 점, 2015~2016년 성과평가에서 매우 낮은 순위를 기록한 점 등을 고려해 재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며 "이번 근로계약 갱신거절에는 합리적 사유가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중노위는 "A씨는 4차례 근로계약이 갱신된 데다 그 업무는 상시적이고 지속성이 있다. 근로계약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된다"며 "산은은 A씨에게 소명기회를 부여하는 등 계약갱신 거절에 대한 충분한 심의를 하지 않았다. 합리적 이유 없이 갱신을 거절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법원은 A씨에게 근로계약 갱신 기대권이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산은이 A씨와 계약을 종료한 데에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봤다. 산은 측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재판부는 "A씨의 업무 중 신규점포 신설 업무는 소멸했지만 점포 이전 및 리모델링 업무는 소멸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며 "A씨가 이미 4차례 계약을 갱신해왔고 A씨를 제외한 나머지 기간제 전문직도 모두 재계약을 체결했다. A씨에게 계약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봤다.

다만 "당시 산은의 경영여건 변화로 점포 개설이 사실상 중단되고 기존 점포의 통·폐합으로 담당 인원의 감축이 진행되고 있었다"며 "점포 신설 업무에 대응하기 위해 A씨를 채용한 점을 고려하면 이같은 업무수요 및 여건의 변화는 재계약 여부를 결정할 때 고려할 수 있는 중요 요소"라고 판단했다.

또 "전 직원간 상호 평가에서 A씨는 2015~2016년 연속으로 낮은 점수를 받아 상대적으로 낮은 등수를 받았다"며 "산은에는 '재계약 여부 결정 전 당사자에게 소명기회를 줘야 한다'는 절차규정이 없다. A씨에게 소명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충실한 심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법무법인 화우의 오태환 변호사는 "계약갱신 기대권이 인정됨에도 해고가 적법하다고 판단되는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종종 나온다"며 "갱신 거절에 합리적 사유가 인정되는지 여부가 부당해고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