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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폐소생술 배우던 여학생, 울음이 터졌다

[소방의 날 인터뷰]서울 송파소방서 정경진 소방장(41)…"시민 한 명 잘 교육하면 수십, 수백명 살려"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입력 : 2018.11.09 06:10|조회 : 6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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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차 정경진 소방관(41)은 간절한 마음으로 시민들에게 안전교육을 한다. '심폐소생술'이라면 이렇게 말한다. "심정지 골든타임은 4분, 가족이 쓰러진다면 당신 밖에 지킬 사람이 없다"고. 알려야 더 많은 사람이 산다는 마음으로, 어디든 달려간다./사진=서울 송파소방서
17년차 정경진 소방관(41)은 간절한 마음으로 시민들에게 안전교육을 한다. '심폐소생술'이라면 이렇게 말한다. "심정지 골든타임은 4분, 가족이 쓰러진다면 당신 밖에 지킬 사람이 없다"고. 알려야 더 많은 사람이 산다는 마음으로, 어디든 달려간다./사진=서울 송파소방서

차디찬 겨울 밤이었다. 2017년 12월21일, 밤 10시30분. 노래방·PC방·목욕탕 등을 한창 돌 때였다. '안전 교육' 좀 받으시라고. 한 손엔 스마트폰 지도, 한 손엔 교육 대상자 목록을 쥐고 있었다. 뼛속까지 추위가 스며들고, 두 손은 얼얼했다. 그 와중에 스마트폰 메신저가 울려댔다. 바빠 죽겠는데, 뭐야 귀찮게. 하지만 답을 바라는 울림은 계속됐다.

심상찮은 느낌에 내용을 봤다. 시댁이었다. "시골 어르신들은 괜찮아?", "부모님은 별고 없으시냐." 그제서야 알았다. 고향 충북 제천서, 크나큰 화재가 났다는 걸. 그 때, 가족 채팅방에 소식이 떴다. 고종사촌 오빠 아내가 사망했다고. 어렸을 때 같이 지낸 오빠였고, 잘 알던 언니였다. 황망하고 심란한 마음에 그 자리서 얼어 붙었다. 연가를 부랴부랴 낸 뒤 그 길로 제천에 내려갔다.

빈소도 못 차린 곳엔 사촌 오빠, 팔순이 가까운 고모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세 명의 아이들.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3학년, 대학교 3학년이었다. 이제 이들에게 아내와, 엄마와 함께하는 단란한 저녁은 없을 터였다. 죽음이란 이런 거구나,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무너졌다.

언니가 발견된 곳은 건물 위였단다. 참 마지막까지 많이 애썼다, 살려고. 고생 끝에 낙(樂)이 온다더니, 극락(極樂)이었다. 운명은 너무 가혹했다. 인명은 재천(在天)이라지만, 그날 제천(堤川)에선 너무 많은 고귀한 이들이, 불길에 종이장처럼 사그라들었다.
21일 오후 3시53분쯤 충북 제천시 하소동의 8층짜리 스포츠센터 건물에서 불이 나 소방당국이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화재로 현재까지 16명이 사망했다./사진=뉴스1
21일 오후 3시53분쯤 충북 제천시 하소동의 8층짜리 스포츠센터 건물에서 불이 나 소방당국이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화재로 현재까지 16명이 사망했다./사진=뉴스1

'유가족'으로, 그렇지만 '소방관'으로 빈소에 있었다. 맘이 복잡했다. '유리를 깨면 살았을까' 생각이 들면서도, 근무 여건이 어떤지 떠올랐다.

2001년 7월6일, 처음 소방관을 시작한 게 충북 충주소방서였다. 구급대원이었다. 한 센터에 6명 있었다. 센터장, 부센터장 빼면 사람보다 구급차가 더 많았다. 그만큼 열악한 환경이었다. 말이 구급대원이지, 불도 껐다. 그래서 '구급경방'이라 불렀다. 화재 출동 나가면 방화복도 없었다. 한 번은 불 끄러 갈 때 아무 옷이나 하나 주워 입었다. 나중에 보니 소방서장 옷이었다. 선배들이 "네가 지휘관이냐"며 핀잔을 줬다.

제천 빈소에 다녀온 다음날이었다. 노래방·학원·PC방·찜질방·목욕탕 사장님들 교육이 있었다. 간곡히 부탁 드렸다. 당신들이 저를 지켜줄 사람들이라고. 인명을 구하는 건 저희들이 고민할테니, 부디 관리를 잘해달라고. 소화기를 잘 놓고, 비상구를 잘 만들고, 막지 말고, 도망가게 도와달라고.

생명을 살리는 게 그런 교육이라 믿고 있다. 그래서 2015년 7월 광나루 안전체험관에서 시작해, 지금은 송파소방서에서 안전 교육을 맡고 있다. 특성상 출장이 많다. 공공기관, 민간기업, 장애인복지관, 학교 등 어디든 간다.

안전 교육에 목매는 이유는 하나다. 구급대원 한 명이 가면, 한 명을 살릴 수 있다. 하지만 시민 한 명을 잘 교육하면, 수십명 혹은 수백명을 살릴 수 있다. 2016년 9월, 마포구 서교동 다세대주택서 불이 났을 때 초인종을 눌러 일일이 깨운 의인(義人) 안치범씨처럼. 물론 생명을 희생해선 안되겠지만, 자발적으로 시민들이 움직일 수 있다면 어떨까. 100명 중 64명은 집에서 '심정지'가 발생하는데, 골든타임 4분을 지켜줄 사람이 누굴까.

더 와 닿을 수 있도록 실제 사건 얘길한다. 2015년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화재 땐 완강기가 있었지만 사용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부산 해운대 아파트 화재 땐 집과 집 사이 '경량식 칸막이'가 있었다고. 부수고 탈출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해 엄마가 아이 둘을 끌어안고 숨졌다고. 제천 화재 때도 비상구가 1층과 2층 모두 있었지만, 막혀 있던 2층 여탕만 수많은 이들이 숨졌다고.
정경진 소방장(41)이 시민들을 대상으로 소화기를 분사하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서울 송파소방서
정경진 소방장(41)이 시민들을 대상으로 소화기를 분사하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서울 송파소방서

교육하다 잊지 못할 이야기도 듣는다. 한 여고 교육을 나갔을 때였다. 심폐소생술을 알려주는데 한 아이가 갑자기 울었다. 이유를 물으니 '엄마가 얼마 전 돌아가셨는데, 이걸 배웠으면 살 수 있었을텐데'라고 했다. 또 한 초등학교에 갔을 때였다. 교장 선생님이 '이 교육 너무 중요하다' 하시기에 사연을 들었다. 그 학교 선생님 부부가 있는데, 남편이 심정지 왔을 때 아내가 심폐소생술을 해서 살렸다고. 안타까운 상황을 막는 게 안전 교육이라고 했다.

어려운 걸 몰라서 죽는 게 아니라, 가장 간단한 걸 몰라서 죽는다. 그럼에도 교육을 하면 많이들 지루해 한다. 그래서 노래도 하고, 춤도 춘다. 재밌게 해 사람만 살릴 수 있다면 뭔들 못하랴. 교육을 받아 체득해야 한다. 아는 것과 몸이 반응하는 건 또 다르다.

할아버지 친구는 밭둑에 불을 놓다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멍청하게 나오지, 왜 있다가 죽었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 하셨다. 그런데 그런 할아버지가 밭에서 불길 잡겠다고 하시다, 질식해 돌아가셨다. 자신은 정말 그렇게 안한다 해놓고, 허망하게 돌아가셨다. 교육을 반복해야 하는 이유다. 누구든 재난 속에 들어갈 수 있기에.

알고 있는 걸 알려줘 누군가 안전해지는 것, 17년 소방 생활서 지금 가장 보람을 느끼는 이유다.

남형도
남형도 human@mt.co.kr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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