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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기 너머 낯선 남자의 욕설, 심장이 떨렸다[남기자의 체헐리즘]

'120 다산콜센터' 8시간 체험기(記)…말 자르고 욕해도 "시민님,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입력 : 2018.11.10 06:10|조회 : 3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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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하고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매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고 다니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전달하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120다산콜센터 저녁1팀 박경은 상담사(왼쪽)와 상담사인 척 옆에서 듣고 있는 기자(오른쪽). 헤드폰이 작을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한쪽만 끼우는 방식이었다. 괜히 터틀넥을 입고 갔다가 더워서 혼났다. 원래 1명이 근무하는 공간이라 비좁다. 이 곳에서 서울시민들의 민원을 처리한다./사진=120다산콜센터 이경은 주임
120다산콜센터 저녁1팀 박경은 상담사(왼쪽)와 상담사인 척 옆에서 듣고 있는 기자(오른쪽). 헤드폰이 작을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한쪽만 끼우는 방식이었다. 괜히 터틀넥을 입고 갔다가 더워서 혼났다. 원래 1명이 근무하는 공간이라 비좁다. 이 곳에서 서울시민들의 민원을 처리한다./사진=120다산콜센터 이경은 주임
수화기 너머 낯선 남자의 욕설, 심장이 떨렸다[남기자의 체헐리즘]
"저기, 박원순씨가 그렇게 시켰나요? 맨날 서울시민 위한다면서 XXX의 XX, 그거."

갑작스런 욕설이 귓가에 꽂혔다. 정신이 번쩍, 심장이 두근거렸다. '불법주차' 민원을 듣던 중이었다. 버스가 30분 막혔다며 짜증내던 남성이, 쌍시옷 섞인 말들을 시작했다. 받아내는 건 상담사 몫이었다. "시민님 입장 충분히 이해합니다", "당연히 무슨 말씀이신지 압니다." 박경은 상담사(44)가 차분히 화(火)를 달랬다. 10여분간 퍼붓던 민원인은 "목소리만 높아지니 그만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박 상담사는 마지막까지 친절했다. "감사합니다, 상담사 박경은이었습니다." 대답은 없었다.

텀블러를 드는데, 손이 좀 떨렸다. 박 상담사가 말했다. "들으셨죠? 저희는 이게 보통 일이라서." 이를 '폭탄 돌리기'라 했다. 언제, 누구에게 갈 지 몰라 조마조마한 마음이 느껴졌다. 하루 두세번씩 들으면 '내가 왜 출근했지'하며 자조(自嘲)한단다. 10년을 일해도 매번 놀란다고 했다.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나도 모르게 "아이고…"하며 안타까운 마음이 삐져 나왔다. 박 상담사는 웃으며 "그러실 필요 없다, 욕이라 생각도 안한다"고 담담히 답했다.

올 겨울 즈음이었나, 음식 배달이 늦게온 적이 있었다. 1시간 반이 걸렸다. 아마 눈이 많이 내린 날였던 것 같다. 허기는 분노가 됐다. 콜센터에 전화해 짜증을 퍼부었다. 대꾸를 안하던 상담사는 다 듣더니 "불편 드려서 죄송하다" 했다. 친절한 웃음도 함께. 음식은 맛있었고, 배고픔이 사라지니 정신이 들었다. 상담원 웃음이 생각났다. 그게 목에 걸려 넘어가질 않았다. 따져보면 그의 잘못이 아녔다. 그럼에도 화를 냈고, 그럼에도 친절히 웃어 보였다.

'감정노동'을 생각하게 됐다. 그 단어에 못 담긴 삶을, 꾹꾹 억눌러야 하는 마음을 느껴봤으면 했다. 국내 임금근로자 1700만명 중 740만명(43.5%)가 감정노동자(안전보건공단 2013년 통계)라 했다. 이중 26.6%는 심리상담,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 증세를 겪는단다. 일주일에 이틀 이상 우울 증상을 겪는 비중이 50.9%나 됐다(서울연구원 2017년 통계). 극단적 선택을 하는 근로자들 중 28.52%가 감정노동 관련 직군이었다(한양대 의대 김인아 교수 '노동자 과로자살 현황 및 대책' 보고서).

120 다산콜센터가 떠올랐다. 서울시 '민원 창구'다. 고마운 기억이 있었다. 아내가 퇴근할 때였다. 시내버스가 너무 더운데, 에어컨을 안 튼다고 했다. 버스 기사에게 직접 말하라하니, 못하겠다고 했다(쑥쓰). 승객들도 부채질만 하고 있다고 했다. 120에 전화해 버스 번호를 말하며, '에어컨을 틀어줄 수 있느냐'고 했다. 버스 회사에 전달해준다고 했다. 10분 뒤, 아내가 버스 에어컨이 나온다며 기뻐했다. 시원해서 살 것 같다고.

120 다산콜재단 협조로, 이 곳에서 상담사 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6일 저녁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총 8시간이 목표였다. 밤과 새벽 시간을 택한 건 그 시간대 '악성 민원'이 많다고 해서였다. 술에 취해 전화하는 이들이 대다수라 했다.



하루 80~120통 전화, 책상엔 '넉넉한 커피'




익일 새벽 1시까지, 총 7시간을 근무하는 120다산콜센터 저녁팀 상담사들. 전화가 몰리지 않게끔, 시간을 나눠서 휴식을 한다. 서울시민들이 새벽에도 불편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 24시간 조명이 환히 켜진다./사진=남형도 기자
익일 새벽 1시까지, 총 7시간을 근무하는 120다산콜센터 저녁팀 상담사들. 전화가 몰리지 않게끔, 시간을 나눠서 휴식을 한다. 서울시민들이 새벽에도 불편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 24시간 조명이 환히 켜진다./사진=남형도 기자

퇴근하고 120 다산콜센터로 향했다. 서울 동대문구에 있었다. 가기 전 백반을 든든히 먹었다(배고프면 예민). 도착하니 4층은 '불야성'이었다. 모든 조명이 켜져 있었다. 혼자 앉으면 딱 맞는 좌석들이,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서로 연결돼 있었다. 저녁1~3팀 상담사 22명은 이미 바삐 전화를 받고 있었다. 1팀과 2팀은 전화상담, 3팀은 문자상담을 맡았다. 주간 팀이 교대하는 잠깐 새에도, 전화가 쌓여 바쁘다고 했다. 저녁팀 근무 시간은 저녁 6시부터 새벽 1시, 이어 심야 팀이 새벽 1시부터 아침 8시까지 근무한다고 했다. 365일, 24시간 돌고 또 돈다.

'10년차 베테랑' 박경은 상담사가 '짝꿍' 이었다. 이번 체험에서 기자는 '꼽사리(남이 노는 판에 거저 끼어드는 일)'였다. 100시간 넘는 교육을 받고, 멘토와 동석해 한참 배운 뒤 상담이 가능하다 했다. 그래서 직접 해 볼 엄두도 못 냈다. 민폐를 끼칠까 걱정되기도 했다. 대신 박 상담사 오른편에 조심스레 앉았다. 전화가 걸려오는 걸 같이 듣기로 했다. 헤드셋을 끼고, 통화 중인 박 상담사와 눈 인사를 했다. 좁다란 공간에, 취재에 필요한 노트북을 올려 놓았다. 책상엔 전화기 1대, 모니터 2대, 식물(다육이) 화분 두 개, 작은 선풍기 등이 놓여 있었다. 복분자 음료와 아메리카노 한 잔, 카페라떼, 사탕 등이 든 간식통도.

통화를 마친 박 상담사가 텀블러를 가져가더니, 커피를 담아와 마시라고 건넸다. 커피를 끊은 지 1년이 넘은 터라(☞커피, 1년간 끊어봤다[남기자의 체헐리즘], 8월11일자 참조) 받아 놓기만 했다. 마시는 척만 할 참이었다. 저녁은 드셨냐 했더니, 시간이 애매해서 보통 잘 못 먹는다 했다. 다른 상담사들 책상을 보니, 인스턴트 전복죽, 귤 등이 놓여 있었다. 통상 대충 해결하는 모양이었다. 하루 80~120통 전화를 받는 이들의 식사였다.

주요 업무는 민원 전화를 받고, 내용을 각 기관에 전달하고, 끊은 뒤 정리하는 거였다. 모니터상 버튼은 '상담가능', '전화받기', '전화끊기', '전화걸기' 등이었다. 안내에 필요한 공지사항 등도 화면에 있었다. 그날 화두는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였다. 미세먼지가 심각해 차량 2부제를 권고하고, 2005년 이전 등록 경유차 등 운행을 제한하는 것. 이미 오후 5시29분에 120에서 문자가 왔던 터였다. 박 상담사는 "이슈가 있으면, 관련 전화가 많이 온다"고 예고했다. 메르스 사태 땐 정말 힘들어서 혼났단다. 겨울엔 수도 동파, 여름엔 폭우, 눈 오면 제설작업, 명절 땐 쓰레기 민원이 많다고 했다.




한 통 한 통이 피로, 1년 끊은 커피를 마셨다




박경은 상담사가 텀블러에 담아준 커피. '커피 끊었다'고 말해야되는데 타이밍을 놓쳐서 그냥 받았다. 그런데 상담하다 보니 커피가 정말 필요해서 마시게 됐다. 1년 만에 다시 드링킹 한 커피였다. 그래도 워낙 피곤해서 새벽 3시에 집에 들어간 뒤 잠은 잘 잤다. 텀블러에 '우쥬라익썸커피(커피 좀 드시겠어요?)'라고 적혀있다./사진=남형도 기자
박경은 상담사가 텀블러에 담아준 커피. '커피 끊었다'고 말해야되는데 타이밍을 놓쳐서 그냥 받았다. 그런데 상담하다 보니 커피가 정말 필요해서 마시게 됐다. 1년 만에 다시 드링킹 한 커피였다. 그래도 워낙 피곤해서 새벽 3시에 집에 들어간 뒤 잠은 잘 잤다. 텀블러에 '우쥬라익썸커피(커피 좀 드시겠어요?)'라고 적혀있다./사진=남형도 기자

감정노동을 떠올리면 으레 그렇듯, '폭언·욕설'이 가장 힘들거라 여겼다. 그래서 그런 전화가 오길 기다렸다. 제대로 취재해 고발하리라 여겼다. 하지만 이 또한 겪어보지 않은데서 나온, 짧은 생각이었다.

그냥 온갖 민원 전화를, 계속해서, 그것도 친절하게 받는 것 자체가 힘든 거였다. 오래 받고 있자니 기가 쭉쭉 빠져나갔다. 그걸 8시간씩 앉아서 받아야 했다. 단순 궁금증 해소, 안내 문의도 있지만, 대다수 불만이 꽉 찬 상태에서 걸려왔다. 불법주차를 해놨다고, 교통통제를 왜 하냐고, 경유차 왜 운행 못하냐고, 불법 현수막이 있다고, 쓰레기가 많다고, 따릉이(자전거)가 안된다고. 민원인들 화(火)를 마주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많은 이들이 상담사가 잘못한 듯 화를 냈다. 오후 6시44분엔 "아까 주차 불편해서 두 번씩 전화했는데, 불법 주정차 계도 안내장만 붙이고 갔다"며 따졌다. 영등포구 소관이라 접수해주겠다 해도, "불편해서 오후 4시부터 계속 했는데, 기껏 계도장만 붙이냐"며 또 따졌다.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오후 7시36분엔 "남의 집 앞에 주차해놓고 전화를 안 받는다"며 전화가 왔다. 박 상담사가 "도로서 발생한 것만 구청 단속 권한이 있다"고 하자 "거참, 되게 황당하네. 그럼 아무 때나 가서 남의 집에 주차해도 되느냐. 전화 20통을 해도 안 받는다"는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밤 11시27분에 전화 온 택시 기사는 "승객이 승차거부 허위 신고를 할 것 같다"고 했다. 사연인즉, 승객이 중랑구청에 가달라 했단다. 그래서 기사가 '여기서 타면 돌아간다' 했더니, 승객이 '그럼 반대편에 가서 타겠다'며 내렸다고 했다. 보통 이런 승객이 승차거부로 신고하는데, 억울하다고. 그러면서 그간 5번씩 이런 일이 있었다며 하소연을 시작했다. "안전벨트 매달라 했더니 승차거부 신고를 했다", "120에서 왜 접수를 해주느냐", 이런 거 다 접수되면 너무 지친다, 안되게 해달라", "악용하는 사람이 많다" 등의 이야기였다. 격앙된 기사의 전화는 10분간 계속됐다. 30분은 대화한 느낌이었다. 기운이 쭉 빠졌다.

저녁 7시, 커피가 담긴 텀블러를 들었다. 무의식 중 한 행동이었다. 전화 받은 지 1시간 만이었다.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1년 만에 마시는 커피였다. 이를 지켜본 박 상담사가 "원두가 별로 맛이 없다"며 사탕을 몇 개 건넸다. 카페인당, 두 가지가 왜 책상에 있었는지 알게 됐다. 그날 8시간 동안 기록한 민원 내용만, A4 용지로 50페이지가 넘었다. 이를 모두 들어야 하는 일이 상담사 역할이었다.



반말하고, 말하는데 전화 끊고…신경이 곤두섰다




120 다산콜센터 상담사들 휴게실. 직원수에 비해 공간은 부족하다고 했다. 편히 몸을 뉘일 공간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왼편에 있는 안마의자를 이용하고 싶었지만, 체험해야 해서 참았다./사진=남형도 기자
120 다산콜센터 상담사들 휴게실. 직원수에 비해 공간은 부족하다고 했다. 편히 몸을 뉘일 공간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왼편에 있는 안마의자를 이용하고 싶었지만, 체험해야 해서 참았다./사진=남형도 기자

잔 신경을 곤두세우는 통화도 많았다. 박 상담사는 굳은 살이 박인 듯 했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분명 불쾌한 일들이었다. 한 마디로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없는 이들이 많았다. 사람이 아닌, AI(인공지능)로 여기는듯 했다.

반말은 예사였다. 밤 9시46분에 온 민원 전화. 강동구 한의원 인근 골목에 누군가 불법주차를 했다고 했다. 50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이는 말이 짧았다. "병원 문을 두드려도 안 나와", "노란색 학원 차거든?", "여기 뭐 맨날 그래, 맨날", "사진 찍어서 보낼까, 어떡할까 이거", "아주 못된 놈들이거든" 등이었다. 반면 상담사는 매번 "시민님"이라 존칭을 쓰며 말을 높였다.

상담사 말을 중간에 끊는 경우도 많았다. 주로 화난 상태에서 말하다보니 그랬다. 저녁 8시23분, 강남구서 인테리어 폐기물을 치워달라는 민원 전화가 걸려왔다. 상담사가 재차 확인하며 "실내 인테리어 공사 하면서 발생한 건축물을 무단으로 (버리셨다는 말씀인 거죠?)"까지 얘기하자 말을 끊은 뒤 "의자라든지 그런 것들이 계속 방치돼 있다"고 했다.

말하고 있는데 전화를 끊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상담 말미에 "잘 처리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상담사 박경은이었습니다" 하는데, 말하는 도중 '뚜뚜뚜' 소리가 들려왔다. 박 상담사는 이런 건 아무 것도 아니라 했다. "다른 문의 사항 없으십니(까)" 하는데 확 끊는 경우도 있었다. "감사합니다"란 말을 하는데 끊을 땐 화(火)가 같이 올라왔다. 무안하고 기분이 나빴다. 나지막한 한숨 소리가, 옆에서 크게 들렸다.

하지만 감정을 추스를 새도 없이 '상담 가능' 버튼을 눌렀다. 그러면 3초 내에 또 다른 전화가 걸려왔다. 계속 안 받았다간 더 많이 쌓이기 때문에 압박이 심할듯 했다. 이전 전화 때문에 입이 안 떨어질 만큼 불쾌한데, 아무렇지 않게 친절히 민원 상담을 했다. 감정이 뒤틀리는 듯 했다.



"불편하셨죠, 이해합니다, 죄송합니다"




120 다산콜센터 엘리베이터 부스에 붙어 있던 '고마워요 120' 게시판. 소소하지만 시민들이 고맙다고 하는 이 한 마디가, 상담사들을 기운나게 한다고 했다./사진=화장실 갔다 돌아오던 남형도 기자
120 다산콜센터 엘리베이터 부스에 붙어 있던 '고마워요 120' 게시판. 소소하지만 시민들이 고맙다고 하는 이 한 마디가, 상담사들을 기운나게 한다고 했다./사진=화장실 갔다 돌아오던 남형도 기자

상담사에게 허락된 말은 많지 않았다. 요약하면 그저 '친절'이었다. 전화 받을 땐 "120다산콜센터 박경은입니다"라고 했고, 말 머리엔 늘 "시민님"을 붙였다. 뭔가를 찾을 땐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시민이 불편한 일을 겪은 경우엔 "많이 불편하셨죠, 죄송합니다"라고 반복했고, 오래도록 토로할 땐 "이해합니다"를 반복했다. 상담 마지막엔 "감사합니다, 박경은이었습니다"라고 꼭 했다. 전화는 먼저 끊지 않았고, 아무 말이 없어 피치 못하게 끊을 때도 "전화 끊겠습니다"라고 한 뒤 끊었다.

이는 '진상 민원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최근 감정노동이 화두가 된 뒤부터는, 수법이 더 교묘해졌다. 대놓고 막말하기 보단 민원 내용과 욕설을 교묘히 섞는다. 민원이 담겨 있으니 함부로 끊을 수도 없지만, 폭언은 폭언대로 듣고 있어야 하는 것. 이와 관련해 박 상담사는 상처 받았던 일들을 털어놨다.

지난달 30일엔 한 여성이 불편사항을 얘기하며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앵무새에요?" 그러더니 "앵무새가 들으면 서운하겠네, 그게 비하 발언이에요?"라고 했다. 이어 "혹시 조선족이에요?" 그러다가 "조선족이 비하 발언이에요? 똑바로 말해보세요", "듣는 사람이 그렇게 들었나보지?", "왜 시민님이 물어보는데 대답을 안해요?"라며 비아냥거렸다. 상담사가 할 수 있는 말은 "상담사 비하 발언을 하시면 상담이 어려우니 먼저 종료하겠습니다" 정도였다.

보통 "저기요" 하는 말이 들려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또 시작되겠다는 감(感)이 와서다. 한 번은 전입신고를 하겠다 해서 행정동을 알려달라고 했다. 시민이 "봉천동"이라 해서, 상담사가 "봉천동은 행정동이 아니라 법정동이라, 주소를 알려달라" 했더니 "저희 집 주소 왜 알려고 하는 거예요?"라며 비난이 시작됐다. 설명해도 "절 가르치려 하는 거예요?", "왜 말꼬리 잡아요?", "상담사 이름 뭐예요?"라며 계속 따졌다. 어쩔 수 없이 "언짢으셨다면 죄송합니다" 했더니 "본인 잘못한 게 없는데 미안하다는 거예요?", "욕하고 싶죠? 화났네"라고 했다.



기계가 아니라, '사람 마음' 이었다




의자에 걸친 겉옷, 쉬려고 일어나다 돌아간 의자, 곳곳서 들리던 한숨소리와 통화소리. 민원을 해결하는 건 기계가 아닌, 사람이었다. 이를 누군가는 "앵무새 같다"고 하며 상처를 내기도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의자에 걸친 겉옷, 쉬려고 일어나다 돌아간 의자, 곳곳서 들리던 한숨소리와 통화소리. 민원을 해결하는 건 기계가 아닌, 사람이었다. 이를 누군가는 "앵무새 같다"고 하며 상처를 내기도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이를 모두 견뎌낸 상담사들 마음은 뒤엉킨다. 이날도 자리 곳곳에선 상담사들이 견디다 못해 화(火)를 표출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짜증나" 등의 내용이었다.

전화 받는 AI(인공지능)가 아녔다.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 마음이었다. 상처도 똑같이 받고, 화도 똑같이 냈다. 지치고 지치다 못 견디겠다 싶을 땐, 자리를 떠서 잠시 휴식을 취하러 갔다. 전화를 끊은 뒤엔 굳은 표정도 짓고, 눈을 가만히 감고 쉬기도 했다. 구체적이고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러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자리 곳곳엔 스스로를 독려하는 메시지들도 붙어 있었다. 오른쪽 칸에서 민원인과 씨름하던 상담사는 '젤리'를 건네기도 했다.

박 상담사는 2015년 퇴근길 새벽 교통사고를 당한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이 생겼다. 아직까지도 치료 중이다. 사고로 시각과 청각이 예민해졌다. 민원인이 소리를 지르면,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했다. 새벽 1시에 퇴근한 뒤 새벽 4~5시는 돼야 잠에 든다. 저녁 시간에 일하는 이유는 모친 때문이다. 심장병을 앓고 있어, 낮엔 병원에 모시고 가야 했다. 언제든 쓰러져 하늘 나라에 갈 수 있다고 의사가 겁을 줬다고 했다.

퇴근하면 다들 그렇듯, 동료들과 넋두리를 한다. 술 한 잔을 기울이고, 제대로 못 챙겼던 밥도 먹는다. "아까 무슨 전화 받았는지 알아?"하면서 그들에게 못 풀어낸 감정들을 서로에게 쏟아낸다. 심리상담실은 따로 없다. 서로 속사정을 가장 잘 아는, 동료들이 큰 위안일 뿐.

마음을 보호해줄 '대응 매뉴얼'은 많이 부족하다. 욕설을 해도 전화를 바로 끊을 수 없도록 돼 있다. 우선 공감 표현을 하고, '시민님, 많이 불편하셨겠습니다'라고 한다. 그래도 계속되면 "시민님의 말씀 이해합니다"라고 해야한다. 그렇게 세 번째가 돼서야 "시민님, 더 이상 상담이 어렵습니다. 통화 종료하겠습니다"라 할 수 있다. 통상 30분 이상 지속될 경우 설명 후 응대를 마치게 돼 있다. 박 상담사는 "(폭언 등이) 갑자기 훅 들어오기 때문에, 순간 당황해서 매뉴얼대로 못한다"고 했다.



자정 넘으니, '건수' 줄고 '통화시간' 길어져




박경은 상담사가 마시던 원두커피. "원두가 별로여서 맛이 별로 없다"고 했지만, 기자가 마시기엔 나쁘지 않았다. 공짜는 늘 괜찮은 법./사진=남형도 기자
박경은 상담사가 마시던 원두커피. "원두가 별로여서 맛이 별로 없다"고 했지만, 기자가 마시기엔 나쁘지 않았다. 공짜는 늘 괜찮은 법./사진=남형도 기자

자정이 넘어가니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오전 12시24분, 약 3시간 만에 자리서 일어났다. 10분간 쉬기로 했다. 화장실에 가는데, 무릎이 뻐근하고 몸이 휘청거렸다. 박 상담사가 '작두콩 티백차'를 건넸다. 목이 아파서, 책상에 놓고 먹는다고 했다. 예전에 한 번은 성대결절로, 상담하다가 목소리가 안 나온 적도 있었단다. 다행히 시민이 "아이고, 어떡하냐. 다른 분께 전화하겠다"며 이해해줘 정말 고마웠다고 했다.

새벽이 가까워지니, 슬슬 '그 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酒)님으로 인해, 정신이 육체에서 이탈한 분들이다. 통상 이맘 때가 되면, 통화 건수는 줄지만 평균 통화 시간은 늘어난다고 했다. 술을 마신 뒤 무슨 말을 했는지 '반복 학습'을 하는 탓이다. 전화를 길게 붙잡을 땐 1시간 가까이 할 때도 있다고 했다.

새벽 1시34분, 경찰관 때문에 속상한 기업 대표님 민원 전화가 왔다. "요청드릴 게 있어 전화드렸어요." 혀가 꼬부라져 있었다. 회사를 운영한다는 시민은 "택시 기사가 기분 나쁘셔서 경찰관님을 부르셨다(존칭 챙김)"고 했다.

하소연이 이어졌다. "요금 정상적으로 결제했고, 안 낸다고 한 적이 없는데도 경찰관을 불렀다. 너무 화가나 120에 전화 드렸다"고 했다. 경찰관이 자신을 범죄자로 대하듯 했고, 그래서 경찰차 번호판을 동영상으로 찍었다는 것. 박 상담사는 경찰청 민원 전화번호를 알려준 뒤 전화를 끊었다. 이어 "다행히 이 분은 전화를 끊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로 막차를 탈 수 있는지, 시간은 얼마 걸리는지, 택시 요금은 얼마인 지 묻는 전화가 많았다. 강북구에 산다는 한 여성은 '여성안심귀가서비스'를 신청하겠다고 했다. 박 상담사가 재빠르게 강북구에 확인한 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알려줬다. 그외엔 전화가 오긴 왔지만 말을 안하거나, '치이이이익' 소리만 이어지기도 했다. 역시 '주(酒)님'의 영향인듯 했다.



'감정노동자' 아닌, '만능해결사'




전화가 걸려오면 두 모니터에서 일사불란하게 민원해결을 위한 대응이 시작된다. 정보를 찾고, 지도를 보고, 검색하고, 다른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고. 이 모든 일들은 시민들 전화를 친절히 받으며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다. 힘든 일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전화가 걸려오면 두 모니터에서 일사불란하게 민원해결을 위한 대응이 시작된다. 정보를 찾고, 지도를 보고, 검색하고, 다른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고. 이 모든 일들은 시민들 전화를 친절히 받으며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다. 힘든 일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상담사들은 악(惡)감정을 참고 견디는 '감정노동자'가 아녔다. 그렇게 표현하기엔 전문적이고, 역할이 컸다. 체험 내내 그런 기분이었다. 뭔가 이들이 하는 일을, 좀 더 정확하게 드러낼 말이 필요하단 생각이었다. '만능해결사'였다.

어려운 일이었다. 체험하면 보통 뭐라도 했었는데, 듣는 것 외엔 흉내도 못 냈다.

전화를 받자마자, 천만 시민이 각자 언어로, 대부분 앞뒤 안 맞게 민원을 쏟아냈다. 이를 찰나에 이해해야 했다. 기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든 것도 많았다. 그런데 상담사는 거의 통역사 수준으로 이해하고, 되묻고, 내용을 확인했다.

전화를 받으면서, 손은 정신 없이 모니터를 움직였다. 지도를 보고, 확대하고, 정보를 찾고, 25개 자치구와 다른 기관에 요청했다. 평소 전화를 하면 척척 이뤄지던 일들이 그냥 되는 게 아녔다. 그 과정을 직접 눈으로 봤다. 전화를 끊을 때쯤엔, 필요한 갖가지 해답이 시민들에게 가 있었다. '만능해결사'였다.

더 중요한 건 '공감(共感)'이었다. 마음을 달래는 일이었다. 불법주차 때문에 환장하겠다는 시민에겐 "말씀하신 것만 들어도 충분히 압니다", "잘 처리되시길 바랍니다"라고 했다. 앵무새가 차 속에 들어가버렸다는 택시기사에게는 "답답하신 마음에 전화하셨죠. 안타깝지만 방법이 없어요. 어떻게 하죠"라고 위로를 건넸다. 그외 민원에도 "어떡하죠", "아이고, 그러셨군요"하며 말을 건넸다. 잔뜩 화가 났던 시민들이, 이들 말 한 마디에 마음이 누그러지는 걸 봤다. 사회 갈등과 화(火)를 줄이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상담사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 향상됐으면 좋겠다"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면 속상하니까, 전문직업인이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경은 상담사가 힘내라며 건넨 'O키스트' 오렌지맛 사탕. 보통 사탕을 먹을 땐 끝까지 굴려먹지 못하고 깨물어서 금방 다 먹는다(TMI)./사진= 집에 도착한 남형도 기자
박경은 상담사가 힘내라며 건넨 'O키스트' 오렌지맛 사탕. 보통 사탕을 먹을 땐 끝까지 굴려먹지 못하고 깨물어서 금방 다 먹는다(TMI)./사진= 집에 도착한 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새벽 1시50분. 하나라도 더 쓰겠다며, 열심히 타자를 치고 있었다. 눈이 뻑뻑하고, 어깨가 뻐근하고, 머리는 멍했다. 그 때 박경은 상담사가 말했다. "기자님, 근데 너무 늦게까지 일하는 거 아니에요? 힘드셔서 어떡해요." 그래서 답했다. "상담사님이 더 힘드시잖아요, 오늘 직접 경험해보니 너무 고생 많으신 것 같아요." 따뜻한 말들이 오갔고, 피로가 녹았다. 민원에 찌들었던 마음도 가벼워졌다.

며칠 뒤, 120 다산콜센터에 전화했다. 남성 상담사가 받았다. 이렇게 말했다. "상담사님, 늘 고생 많으십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말 하려고 전화 했습니다" 체험 내내 듣고 싶던 말이었다. 상담사는 "감사하다"며 웃었다. 통화는 짧게하고 후다닥 끊었다. 쑥스러워서.

남형도
남형도 human@mt.co.kr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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