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삶]양진호의 맥주 500㏄ 원샷·염색 강요…'처벌 불가능'

퇴직자 폭행, 워크숍에서의 동물 도축 강요 등으로 화제가 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에서 양 회장의 '초'갑질이 고구마 줄기처럼 드러나고 있다. 비흡연자에게 흡연을 강요하고, 500㏄ 잔에 든 맥주를 한번에 마시도록 했다. 회식 중 썰지도 않은 생마늘을 강제로 먹이고, 직원에게 총천연색 머리 염색을 강요한 사실도 드러났다.

고용부는 양 회장에 대해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하면서 46건의 법령을 위반한 사실을 명시했다. 그런데 고용부 의견서에는 앞서 언급한 양 회장의 엽기 행각은 범죄행위로 들어있지 않았다. 양 회장의 불법 혐의는 직원을 향해 콜라가 든 유리컵을 집어던진 죄, 여직원을 성추행한 죄 등만 포함됐다. 또한 지난달 경찰이 양 회장을 구속할 때도 퇴직자 폭행 등의 혐의만 제한적으로 적용했다.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직원들에게 온갖 갑질을 자행한 양 회장의 엽기 행각이 처벌 받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고용부는 직장내 괴롭힘 사례들은 처벌하지 못한 채 부당한 대우와 불합리한 근무환경을 개선하도록 지도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

직장 내에서 지위를 이용해 부하 직원들을 괴롭히는 것은 비단 양 회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마음에 안 든다고 폭언을 하고, 성과가 안 나온다고 밤 늦은 시간에 전화 걸어 닥달하고, 다른 동료들 앞에서 망신을 줘 스트레스 받게 하는 상사들이 지천에 깔렸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가운데 7명이 상사에게 폭행, 폭언, 과도한 업무지시, 따돌림 등 직장 내 괴롭힘을 받은 적이 있다.

이런 사람들로부터 근로자들을 보호하고 갑질을 일삼는 이들을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다. 지난 9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처리한 이 법안은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을 처음으로 법에 명시했다. 또한 괴롭힘 사건이 발생했을 때 회사가 가해자 제재와 피해자 보호를 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런데 이 법이 아직 국회 본회의에 올라기 못하고 있다. 환노위는 통과했지만 두번째 단계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발목을 잡혔다. 일부 법사위 위원들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규정한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정서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문제 삼고 있다.

이완영 자유한국당 의원은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가 매우 불명확해 법이 시행된다면 사업장에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도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애매한 자구 규정을 그대로 두는 것은 법사위가 할 일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개념이 모호하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고질화된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우선 법을 통과시켜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선 입법한 뒤 미비한 부분을 보완해나가자는 것이다.

김경선 고용부 근로기준정책관은 "조속히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정의가 도입되고 회사 내에서 조치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수 있도록 의무화하는 게 엽기적인 직장 내 괴롭힘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이라며 "국회에서 빨리 법이 통과돼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