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펀드 사냥터 될라" 방어권 부족한 재계 '초긴장'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 초청으로 열린 '2019 기업인과의 대화'. 재계 인사 128명과 정부·정치권 관계자가 모인 청와대 영빈관에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이 기업의 경영권 방어 얘기를 꺼냈다.

손 회장은 경영권 위협에 대응할 수 있도록 방어수단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기업이 투자 확대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이나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강화 움직임 등으로 기업이 느끼는 경영권 위협 우려를 가감없이 전달한 발언이었다.


손 회장 언급대로 재계 인사들은 현장에서 체감하는 경영권 위협 우려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고 입을 모았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사회적 분위기에 공감하지만 자칫 일련의 조치가 한쪽으로 쏠려 진행될 경우 제2, 제3의 소버린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소버린 사태는 2003년 헤지펀드 소버린이 SK 주식을 집중 매입한 뒤 경영진 퇴진 요구를 하다 1조원의 시세 차익을 내고 철수한 대표적인 '먹튀' 사례다. 2006년 미국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도 KT&G 주식을 매입해 사외이사 1명을 이사회에 진출시키고 1500억원 가량의 매도 차익을 얻은 뒤 철수했다.

헤지펀드 데이터 조사업체 액티비스트 인사이트에 따르면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공개적으로 경영에 개입했던 표적 기업은 2013년 570개에서 2017년 805개로 40% 이상 늘었다. 특히 아시아 기업을 겨냥한 경영개입이 2011년 10회에서 2017년 106회로 증가했다.


학계에서도 대주주 전횡 견제를 위한 장치 도입 못지않게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현재 우리나라는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기업 방어권과 관련한 제도로는 상장사 주식을 5% 이상 보유한 투자자의 경우 지분 변동 내역을 5거래일 안에 공시하도록 한 주식대량보유보고제도 정도가 전부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소 혁신성장실장은 "최근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공격적인 경영개입 성향을 고려할 때 국내 기업이 헤지펀드의 사냥터로 전락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차등의결권,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제도) 같은 제도 도입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지평 법무법인 김앤장 변호사는 "해외에서 일반화된 경영권 방어권이 도입되지 않다 보니 대다수 기업이 경영권 공격에 대비해 자사주를 보유하거나 만약에 대비해 필요 이상의 현금을 유보하는 방식의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계에선 최근 상황을 두고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동안 지배구조개선을 소홀히하고 전근대적인 경영행태를 방치해 책 잡힐 빌미를 줬다는 얘기다. 한 재계 인사는 "기업 스스로 낙후된 지배구조나 주주환원 정책을 개선하지 못할 경우 앞으로도 헤지펀드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피해의식에 사로잡혀만 있을 게 아니라 현 상황을 객관적으로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