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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날 수 없다"… 한국 '촛불혁명'과 홍콩 '우산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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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은 기자
  • 2019.06.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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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의 그 나라, 홍콩 그리고 反중국혁명 ①] 홍콩서 꾸준히 반중시위… 중국에 대한 불신이 근본적 원인

[편집자주]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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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홍콩 시위 현장. /사진=이재은 기자
"물러날 수 없다"… 한국 '촛불혁명'과 홍콩 '우산혁명'
홍콩인 친구는 내게 한국이 가진 역동성에 대해 늘어놓길 좋아한다. K-POP, K-드라마 뿐만 아니라,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건 한국의 민주주의라면서 말이다.

한국에서 유학 중인 그는 2016~ 2017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혁명에도 참가했다. 당시 그는 내게 홍콩에서도 비슷한 시위가 일어났던 적이 있다며 '우산 혁명'을 소개했다.

'우산 혁명'은 2014년 9월부터 약 79일간 진행된 민주화 시위다. 당시 50만명에 달하는 홍콩 시민들은 홍콩 행정수반 선거의 후보자 추천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며 우산 혁명 시위를 벌였다.

주로 대학생들이 집회를 열었는데, 중고등학생들이 동참하면서 당국이 시위대에 최루탄을 쐈다. 무고한 학생들에게 마구 최루탄을 쏘자 초기엔 시위에 냉담했던 시민들 가슴에도 불이 붙었다. 시민들은 '센트럴을 점령하라'(Occupy Central, 센트럴은 홍콩의 도심)고 외치고, 우산으로 최루탄을 막아내며 대규모 민주화 시위를 벌였다.
홍콩 시위가 59일째로 접어든 25일 당국이 대규모 시위 현장 철거 작업을 시행한 가운데 시위대 10여명이 체포됐다. 이날 까우룽 반도 몽콕 시위 현장에서 버스기사 단체 등이 고용한 집행관들이 이를 저지하는 붐비는 인파 속에서 시위대가 설치했던 텐트를 철거하고 있다. 2014.11.25 /사진=뉴시스
홍콩 시위가 59일째로 접어든 25일 당국이 대규모 시위 현장 철거 작업을 시행한 가운데 시위대 10여명이 체포됐다. 이날 까우룽 반도 몽콕 시위 현장에서 버스기사 단체 등이 고용한 집행관들이 이를 저지하는 붐비는 인파 속에서 시위대가 설치했던 텐트를 철거하고 있다. 2014.11.25 /사진=뉴시스
하지만 한국의 촛불혁명이 대통령을 탄핵시키며 성공적으로 끝난 것과 달리, 우산혁명은 허무하게 끝났다.

중국 정부가 권위주의적인 태도로 '무대응'으로 일관했으며, 홍콩 내에서도 시위 장기화에 따른 경제 악화를 이유로 시위를 반대하는 여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어 시위 중심지였던 몽콕과 애드미럴티의 바리케이드 등이 홍콩 당국에 의해 철거되면서 시위는 시작 79일 만에 허무하게 종료됐다.

사실 홍콩에는 '우산 혁명'에 비견될 만한 시위들이 이전에도 수차례 있었다. 2003년 7월에는 기본법 23조를 근거로 중국 정부가 국가보안법(안전법) 제정을 시도하자 50만명의 홍콩 시민들이 거리에 나서 조항이 철회됐다. 2012년에는 친중 성향의 국민 교육과목을 필수 도입하려는 시도에 고등학생을 주축으로 한 대규모 반대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 세계인의 이목이 다시금 홍콩에 집중됐다. 지난 9일 홍콩 시민 103만명(주최 측 추산·경찰 추산 24만명)이 빅토리아 파크에 모여 가두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번 시위에는 "홍콩인 7명 중 1명이 참여"했으며, 홍콩이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뒤 일어난 최대 규모 시위다.
지난 12일 홍콩 시위 현장. /사진=이재은 기자
지난 12일 홍콩 시위 현장. /사진=이재은 기자
이번 시위는 왜 일어났으며, 홍콩인들은 무엇에 이렇게 분노하는 것일까? 이야기는 지난해 2월 시작됐다. 한 홍콩 출신 19세 남성은 휴가차 방문한 대만에서 임신한 20세 여자친구를 살해한 뒤 홍콩으로 도피한 혐의를 받았다.

이에 대만은 이 남성을 송환시키기 위해 홍콩의 당국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홍콩 당국은 대만과 범죄인 인도 협정이 없기 때문에 이에 협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남성을 대만으로 송환하지 못함에 따라 홍콩 법원이 강제로 이 남성을 석방할 수 있게 되자, 홍콩 당국은 오는 7월 이전에 범죄인 인도 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의회에 촉구했다.

얼핏 홍콩 당국이 합당한 법안을 추진 중인 것 같은데, 홍콩인들의 태도는 자못 비장하다. 홍콩인들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우리의 요구를 관철하지 못하면 홍콩의 미래는 없다"거나 "홍콩인들은 홍콩의 리더들을 전혀 믿지 못한다. 그들은 베이징 입맛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홍콩인들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며 시위 현장에 나섰다.

홍콩인들은 이 법안이 반중국인사, 인권 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보내는 데 악용돼 홍콩 민주주의와 법치를 무너뜨리고 독립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위가 격화되며 법안 심사가 예정됐던 지난 12일에는 홍콩인들이 입법회 건물 등을 둘러싸고 시위를 벌였고, 경찰 역시 최루탄, 고무탄 등은 물론이고 폭력을 행사하면서 충돌하기도 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홍콩 당국은 인권과 절차적 보호 등은 유지되며 탈세 등 9가지 범죄는 이 법안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홍콩 시민들 분노를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난 12일 시위 현장에서 홍콩 경찰이 시민들에게 최루탄을 발포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지난 12일 시위 현장에서 홍콩 경찰이 시민들에게 최루탄을 발포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시위대는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람 행정장관이 홍콩인들을 배신했다면서 즉각적인 퇴진을 촉구했다. 홍콩 당국이 9가지 범죄는 법안 적용 대상에서도 제외한다고 물러섰는데도 홍콩인들은 왜 이리 절박하게 '반대'를 부르짖을까? 그 이면에는 홍콩인들의 캐리람 행정장관과 중국 본토에 대한 불신이 있다.

먼저 캐리람이 어떻게 행정장관의 자리에 오르게 됐는지가 중요하다. 2014년 있었던 우산혁명 당시 홍콩인들은 '행정장관 완전 직선제'를 요구했었다. 하지만 대표적 '친중파' 캐리람이 당시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켜 1000여명에 달하는 인원을 체포하는 등 강경대응하면서 우산혁명은 좌절됐다. 결국 간접선거제도를 관철시킴으로써 캐리람은 2017년 3월 행정장관에 선임됐다.
찬킨만 홍콩중문대 교수와 추이우밍 목사 등 9명의 2014년 홍콩 우산혁명 지도자들이 지난4월9일 홍콩의 법원에 출두하기 전에 구호를 외치고 있다. / AFP=뉴스1
찬킨만 홍콩중문대 교수와 추이우밍 목사 등 9명의 2014년 홍콩 우산혁명 지도자들이 지난4월9일 홍콩의 법원에 출두하기 전에 구호를 외치고 있다. / AFP=뉴스1
이후 홍콩의 민주주의는 급속도로 악화됐다. 중국 당국과 발맞춰 홍콩 독립운동파 단속을 강화했고, 지난해 9월엔 국가안보와 공공안전, 공공질서 등을 해칠 우려가 있을 때 사회단체의 해산을 가능케 한 '사단(社團)조례'에 따라 홍콩 정당 역사상 최초로 홍콩민족당의 활동을 금지했다.

지난 4월에는 킨만(陳健民·60) 홍콩중문대 교수, 베니 타이(戴耀延·54) 홍콩대 교수, 추이우밍(朱耀明·75) 목사 등 우산혁명 지도부 9인이 전원 징역형을 받기도 했다. 당시 국제적 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HRW)는 "홍콩 법원은 권리를 추구하는 평화시위를 불법행위로 규정함으로써 향후 정부가 활동가들을 기소하도록 만들었다"고 강력 비판한 바 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15일(현지시간) 정부청사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람 장관은 '범죄인 인도법' 개정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2019.06.15/사진=뉴시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15일(현지시간) 정부청사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람 장관은 '범죄인 인도법' 개정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2019.06.15/사진=뉴시스
시위가 점점 격화되고 홍콩인들이 16일 대규모의 시위를 열 것이라고 예고하자 홍콩 당국과 캐리 람 행정장관은 한발 물러났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15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홍콩 당국이 법안의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소통하는 데 실패했다"면서 "법안 2차 심의를 보류하고 연기하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안 심의는 무기한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대는 16일 예정된 시위를 진행했다. 홍콩 재야단체 연합인 '시민 인권 전선'에 따르면 16일 밤 11시 기준 시위에 참여한 홍콩인은 200만명(경찰 추산 33만8000명)으로, 지난 9일 시위 103만명의 두 배에 달하는 인원이었다. 이날 홍콩인들은 오후 2시30분쯤 빅토리아파크에서 모인 뒤 홍콩의 정부 청사가 있는 애드머럴티 인근으로 시가행진을 벌였다.
지난 16일 저녁 8시 홍콩시민들이 모여 시가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지난 16일 저녁 8시 홍콩시민들이 모여 시가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홍콩인들이 시민의 무서운 힘을 보여주자, 캐리 람 행정장관은 이날 오후 8시30분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홍콩인들의 반응은 싸늘하지만 말이다.

앞으로 홍콩에서 이와 유사한 시위는 언제고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대한 홍콩인들의 낮은 신뢰도 때문에 말이다.

그렇다면 홍콩인들은 중국 반환 후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또 시위가 일어나지만 번번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스러지는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중국인들은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다음 편에서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이 평행선으로 달리고 있는 이들의 각 입장을 살펴보고, 왜 자꾸 홍콩과 중국 사이 갈등이 발생할수밖에 없는지 자세히 짚어본다.

☞[이재은의 그 나라, 홍콩 그리고 反중국혁명 ②]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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