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모평 국어, 풀어보니…박사도 기자도 "기가 막혀"

"이해력 테스트지, 지식 테스트가 아니잖아요."

얼마전 머니투데이 취재진이 금융감독 당국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금융감독을 주제로 한 고등학교 국어문제 지문이 화제에 올랐다.

지난달 수학능력평가 시험 수험생을 대상으로 치러진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이하 6월 모평) 국어영역 비문학 지문(27~31번). 글로벌 금융 위기를 전후로 금융정책 기조가 어떻게 달라졌는지가 주제였다.

문제지 내용을 들은 대학교수 출신의 고위 당국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고등학생 수준으로 풀기 쉽지 않은 것은 물론, 현직 금융권 직원들도 제 시간에 정확히 풀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후 취재진은 시험문제를 머니투데이 강상규 미래연구소장에게 보여줬다. 금융을 전공한 경영학 박사 출신으로 미국 대학에서 교수생활까지 한 그 역시 고개를 저었다. 고등학생 수준을 넘는 경제학 배경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도 지문의 문장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학 배경지식이 있으면 맞출 수는 있겠지만, 경제학 시험이 아니라 국어시험이지 않느냐"며 "제대로 된 문장을 써야 하는데, 여기 저기서 짜깁기 하다보니 이런 문제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제 관련 지식이 있는 이들에겐 난이도가 어떨까. 한국은행을 출입하는 머니투데이 한고은 기자가 문제를 풀어봤다. 한 기자는 27~31번 중 1문제를 틀렸지만, 시간은 거의 10분이 걸렸다. 그는 "이 속도라면 국어영역 전체 지문(45문제, 제한시간 80분)을 다 풀기는 힘들겠다"고 혀를 찼다.


이처럼 국어 시험이 아니라 '배경지식 테스트', 그것도 독해조차 힘든 난해한 문장이 동원된 '수수께끼' 문제가 이번 수능에도 어김없이 등장할 것이라는 게 수험생들의 불만이자 공포이다.

지난해 수능 국어영역에서는 '불수능 논란'이 일만큼 초고난도 문제가 다수 출제됐었다. 31번 '만유인력의 법칙' 문제가 대표적이었다. 이에 평가원도 "초고난도 문제를 지양하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지난해 국어영역 비문학 지문 논란 이후에도 여전히 배경지식에 무게를 싣는 관행이 되풀이 되는 것. 입시전문가들은 이 같은 출제 경향이 사교육을 더욱 심화시킬 거라며 우려하고 있다.

/그래픽=김지영 디자인기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에 따르면 6월 모평 국어영역에 응시한 수험생 수는 총 46만4265명. 지난달 25일 발표된 성적표에 따르면 국어영역에서 1등급과 2등급을 구분하는 표준 점수는 132점으로, 1등급 인원이 1만9317명(4.16%)이었다.

평가원은 "고등학교 교육 과정의 내용과 수준에 맞춰 출제했다"고 발표했고, 대다수 입시학원들도 "지난해 수능 국어보단 쉬웠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하지만 교육당국이나 학부모를 의식한 공식적인 발표와 달리 학원가에서는 비문학 지문 내용이 지나치게 어려웠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7~31번 문제가 나온 경제 관련 비문학 지문에 대해 모평 시험을 봤다는 고3 수험생 김모군(19)은 "지문을 보고 또 봐도 무슨 말인지 몰라 한참을 헤맸다"며 "결국 시간만 잡아 먹는 것 같아 건너 뛰고 다른 것부터 풀었다"고 했다. 고3 수험생 최모양(19)도 "집중해서 풀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됐다"며 "결국 3문제 틀렸다"고 했다.

입시 전문가들은 국어영역에서 '배경지식'을 강조하는 출제 경향이 계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과거엔 독해력을 중시했다 하면, 최근 출제 경향은 배경지식 역할이 커지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며 "출제자들 특성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출제 경향으로 인해 사교육에 쏠리는 등 부작용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 소장은 "지난해 국어 수능 이후 국어 학원이 잘 되고 있다. 국어 문제가 어려워지니 자꾸 몰려가는 것"이라며 "너무 전문 지식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