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살' 삼성의 침묵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뉴시스

삼성전자 (78,900원 ▲1,500 +1.94%)가 오는 11월1일 창립 50주년을 조용히 맞는다. 앞날을 기약하기 어려운 외풍의 결과다. 불확실성의 파고 앞에 눈치보기에 익숙해진 재계 전반의 현주소라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복수의 재계 소식통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오는 11월1일 창립 50주년을 별도의 기념행사 없이 보낸다. 연초부터 창립 50주년 TF(태스크포스)팀을 운영했지만 50년 역사를 재조명하는 사사(社史·회사의 역사)를 내는 것말고는 외부에 드러나는 계획이 없다.


창립기념 당일 김기남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 디스플레이 사업)부문 부회장, 고동진 IM(IT&모바일)부문 사장, 김현석 CE(소비자가전)부문 사장이 사업부별 또는 통합 메시지를 임직원들에게 발표하는 것으로 전사적인 기념사나 비전 발표도 갈음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재계 한 인사는 "'기념하되 튀지 않는다'를 전제로 50주년을 치르기로 한 것으로 안다"며 "예년과 다르지 않은 수준에서 조촐하게 기념일을 보낼 것"이라고 전했다.

기업의 50돌은 다음 반세기를 넘어 백년기업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변곡점이라는 의미가 적잖다. 10년 전 창립 40주년 때만 해도 삼성전자는 '연매출 4000억달러(당시 기준 약 473조원), 브랜드 가치 세계 5위 진입'을 골자로 한 이건희 회장의 '비전 2020'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조촐한 50주년을 두고 일차적으로는 이건희 리더십과 이재용 리더십이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친인 이 회장이 구체적인 목표를 내세워 외형성장을 이끌었다면 이 부회장은 내실 다지기에 좀더 무게를 두는 스타일이라는 평이다. 이 부회장이 사실상 그룹 총수지만 삼성전자 경영에 주력하면서 계열사별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이어가는 것도 평소 지론 때문으로 알려졋다.

재계에서는 최근 기업을 둘러싼 여건이 만만찮다는 목소리도 높다. 미중 무역전쟁, 일본의 수출규제 등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당장 내년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십년대계를 공언하며 자축할 만한 현실이 아니라는 하소연이 많다.

삼성전자만 해도 지난해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뒤 올해 들어 반토막 실적으로 속앓이 중이다. 지난 8일 발표된 3분기 잠정실적에서 매출 62조원, 영업이익 7조7000억원으로 1년만에 실적이 각각 5.3%, 56.2% 줄었다. 계열사인 삼성디스플레이에서는 인력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25일부터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이 시작되면서 위기를 타개할 리더십이 여전히 반쪽 경영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최근 계열사별 사업을 조율할 사업지원TF마저 사실상 와해되면서 이 부회장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지만 경영행보가 제한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