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종양내과 교수 "동물 구충제, 항암효과있지만 항암제로는…"

구충제 '니클로사마이드'와 '펜벤다졸' 화학구조/사진=뉴스1

유영진 인제대 상계백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펜벤다졸과 관련해 '항암 효과가 있긴 하지만 항암제로 쓸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라는 의견을 냈다.

30일 유 교수는 라디오 tbs '김지윤의 이브닝쇼'에 출연해 이 같이 말했다. 펜벤다졸은 동물용 구충제인데, 최근 말기암 환자들을 중심으로 항암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인기가 높아졌다.


유 교수는 "펜벤다졸은 몇 개의 연구에서 분명히 항암효과가 있다고 나타났다"면서도 "그것만으로 이게 항암제로 쓸 수 있느냐 하고 결론을 내릴 순 없는 문제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근해에 석유가 매장돼 있긴 하지만, 채굴을 하면 엄청난 돈을 들여서 아주 적은 양의 석유를 얻을 수 있는 셈이다. 그러면 석유가 매장돼 있다는 게 큰 의미가 없다"면서 펜벤다졸을 항암제로 쓰는 건 이와 유사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유 교수는 최근 암 환자들이 복용 뒤 통증이 줄었다는 후기와 관련해서는 "펜벤다졸을 쓸 때 다른 치료나 약과 함께 병행해 사용했다"며 "그게 펜벤다졸에 의한 건지, 아니면 함께 사용한 다른 치료에 의한 건지 분명하지 않다"고 밝혔다.


유 교수는 "실험실에서 펜벤다졸을 사용한 결과 암세포를 죽일 수 있었다는 연구결과나 동물시험에서 암세포가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 건 사실이다"라면서도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은 아직까지 진행된 바가 없다"고 했다. 이어 "임상시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부작용이 보고된 사례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직 문제가 생겼다는 게 보고되지 않았어도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면서 "개한테 회충제로선 안전한 것이지만 아직 사람에겐 안정성이 증명되지 않았고, 항암제로 꾸준히 지속해서 먹을 경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펜벤다졸이 암 환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진 건 지난달 26일이다. 이날 강아지 구충제가 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내용의 유튜브 동영상이 암환자 커뮤니티 등을 통해 확산됐다.

이 동영상엔 지난해 '네이처'에 실린 펜벤다졸의 항암효과와 관련된 논문을 근거로 펜벤다졸이 비소세포성폐암(NSCLC), 림프종, 전립선암, 췌장암, 직장암 등에 치료효과가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펜벤다졸이 암세포 증식에 필요한 영양분인 포도당 섭취를 방해하고, 이로 인해 암세포가 사멸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이 공개되자 말기 암환자들을 중심으로 펜벤다졸 치료법을 시도하기 시작했고, 일부 판매처에서는 제품이 일시 품절됐다.

하지만 지난 28일 식약처와 대한암학회는 항암제로서의 펜벤다졸 사용을 경고하고 나섰다. 식약처에 따르면 펜벤다졸은 구충 효과를 나타내는 의약품으로, 낮은 용량에서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으나 고용량을 장기간 투여할 때는 혈액과 신경, 간 등에 심각한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항암제와 함께 구충제를 복용하면 약물상호작용으로 인해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