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重·현대重 이어 현대제철...판교로 모이는 '중후장대'

현대제철이 이전하게 될 경기도 성남시 크래프톤 타워 /사진=신한알파리츠

현대제철이 2006년 12월부터 16년간 머물러 온 현대자동차그룹 양재동 본사 사옥을 떠나 판교에 새 둥지를 틀기로 했다. 정보통신(IT) 이미지가 강한 판교에 자리하게 될 첫 번째 철강사다. 철강업계에선 이례적인 행보지만 중화학공업 전반으로 범위를 넓히면 일종의 추세로도 볼 수 있다. 혁신을 찾아 판교를 찾는 비(非)IT 기업들이 늘고 있다. (관련기사 : [단독]현대제철 양재동 떠난다...철강사 최초 'IT성지' 판교行)

12일 현대제철에 따르면 지난달 임시이사회를 통해 현대제철 서울사무소 이전 안건이 의결됐다. 회사 관계자는 "직원들의 이동 편의성과 업무 효율성 제고 등을 위해 여러 후보지를 물색하다 판교로 이전하는 방안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현대제철은 현대차그룹 미래자동차 연구조직 선행기술원 등이 입주한 분당구 백현동 크레프톤타워로 올 연말 이주한다.


현대제철의 법인등기 상 본사는 인천공장으로 돼 있지만, 서울사무소가 본사 기능을 담당해왔다. 현대제철은 양재동 서울사무소와 인근에 분산된 조직들도 함께 이주해 판교에 통합사무소를 구축할 계획이다. 또, 이곳을 스마트 오피스로 꾸려 수소환원제철과 수소·전기차 소재사업 등 회사의 차세대 먹거리 사업 지원업무와 영업업무의 전진기지로 꾸릴 계획이다.

현대제철 외에도 '중후장대(重厚長大)' 기업들이 분당·판교 지역으로 향하고 있다. 중후장대란 '무겁고 두텁고 길고 크다'는 의미로 자동차·철강·조선·화학 등 대형 제조사업을 통칭한다. 현대제철에 앞서 현대차가 완성차업계 최초로 판교에 미래차 연구조직을 신설했다. 유사한 움직임을 보이는 회사들도 늘고 있어, 판교행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판교와 이웃한 정자동에 글로벌연구개발센터(GRC)를 짓고 있다. 그룹의 컨트롤타워와 연구개발(R&D) 역량이 집중하게 될 이곳에는 현대중공업지주, 한국조선해양 등도 이전할 계획이다. 현재 양사는 서울 종로구 현대계동빌딩에 위치했다. GRC가 완공되는 올해 11월 이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계동현대빌딩은 울산에 본거지를 둔 현대중공업의 본사 역할을 해왔다. 지주사 전환과 조선사업 물적분할 등을 단행하면서 현대계동빌딩 내 조직들이 별도 법인으로 분할된 형태를 띠게 되면서 주소지도 이곳에 두게 됐다.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GRC는 그룹의 미래 경영의 컨트롤 타워가 될 것"이라며 "친환경 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영위하고 있는 사업 시장에서의 선도적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분당두산타워 /사진=두산

두산중공업도 지난해 1월 서울 강남구 교보타워 생활을 청산하고 정자동 분당두산타워로 옮겼다. 분당두산타워가 위치한 지역은 네이버 본사, SK U타워, 각종 IT기업들이 자리 잡은 분당의 중심지다. 두산중공업은 분당 시대 개막을 계기로 신성장 동력에 고삐를 죄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자사 발전 분야에만 국한됐던 디지털 기술을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기 위해 에릭슨엘지 등과 손잡고 5G 기반의 차세대 디지털 사업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판교 테크노밸리에도 조성 초기부터 자리해온 중후장대 기업들을 찾아볼 수 있다. 삼성중공업은 2014년 판교R&D센터를 짓고 본사도 이곳으로 이전했다. 한화그룹도 미래기술연구소와 방산계열사 한화테크윈 본사 및 R&D센터를 판교에 설립했다. 한화테크윈의 방산 라이벌인 LIG넥스원도 '판교하우스'를 설립하고 이곳에서 차세대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SK그룹에서는 SK디스커버리 산하 계열사들이 대거 판교에 밀집했다. SK디스커버리는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SK㈜와는 별개의 지배력을 확보한 '그룹 내 소그룹'이다. SK디스커버리와 산하 SK케미칼·SK가스·SK플라즈마 등의 본사가 테크노밸리 내 위치했다. SK㈜ C&C사업부 데이터센터와 SK플래닛 본사도 근방에 소재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중후장대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급변하는 모빌리티 시장에 대응하고, 탄소중립을 위한 대대적인 체질 개선이 절실한 상황"이라면서 "판교는 서울과 멀지 않은 거리고 사옥 신설을 위한 부지 매입과 대형 사무시설 임대가 용이하다는 점에서 많은 기업들이 이곳을 향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이어 "다양한 협력 모색이 가능한 IT기업들이 밀집했다는 점도 상당한 이점"이라면서 "체질 개선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게 전문이력 수급인데, 판교가 서울과 경기 동남부를 잇는 교통허브로 부상하면서 젊은 연구인력의 선호도가 높아졌다는 점도 중후장대 기업들이 이곳에 집결하는 이유일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