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못 갚아" 러시아 부도위기…"환율 1280원 갈수도"

(모스크바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일 (현지시간) 스크바 외곽의 노보-오가르요보 관저에서 화상으로 열린 페리선 로코솝스키 제독호의 운항식에 참석을 하고 있다. (C) AFP=뉴스1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서방으로부터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가 국가부도사태의 위기에 직면했다. 러시아는 당장 16일 국채에 대한 이자를 지급해야하는데 경제재재로 이를 상환할 수단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러시아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가 현실화될 경우 금융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낮지만 외환시장 불안으로 원/달러 환율이 1280원대까지 급등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5일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전 세계 주요 은행들의 러시아 익스포져(위험노출액)는 지난해 3분기말 기준 1214억달러(약 151조원)에 달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도래하는 첫 이자지급일인 16일에 상환해야하는 금액은 약 1억1700만달러 규모다.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이 지난 1월 기준 6302억달러임을 고려하면 갚을 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각국의 경제제재로 상환할 수단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지난 13일(현지시간) 국영TV에 출연해 "러시아의 외환보유액 중 3000억달러를 사용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은 중국(13.8%)과 프랑스(12.2%), 일본(10%), 독일(9.5%), 미국(6.6%), IMF·BIS(5%), 영국(4.5%), 호주(3%), 캐나다(2.8%), 금(21.7%) 등으로 분산 예치돼 있다. 이 중 러시아가 접근가능한 외환보유액은 금과 중국 예치금이다. 단 중국에 예치한 외환보유액은 대부분이 위안화라 당장 16일 이자지급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는 금 보유가치는 약 1267억달러로 러시아 외채 1214억달러보다 많다. 그러나 이 역시 채무상환 수단으로 사용하기에는 제약이 따른다.

(마리우폴 로이터=뉴스1) 우동명 기자 = 13일 (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서 러시아 군의 포격을 받아 장갑차가 불에 타며 연기가 솟고 있다. (C) 로이터=뉴스1

러시아가 채무상환 의지가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EU(유럽연합) 등 서방이 경제제재에 나선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실루아노프 러 재무장관은 "외환보유액 동결이 해제될 때까지 (부채는) 루블화로 상환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 디폴트 사태가 금융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 전세계 주요은행의 러시아 익스포저 비중은 0.3% 수준으로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기에는 규모가 크지 않다. 러시아 익스포저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는 이탈리아로 약 2.6%를 기록하고 있다. 두 번째인 오스트리아는 1.6%다.

한국의 러시아 익스포저는 세계 평균보다도 낮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한국이 보유한 러시아 익스포져는 6053억원으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각각 2664억원, 2960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전체 익스포져 중 0.1% 수준으로 국내 금융회사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러시아 디폴트가 현실화될 경우 금융시장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특히 신흥국 통화로 분류되는 원화는 안전자산 선호현상 강화로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280원대까지 오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이날 전 거래일 대비 0.5원 오른 1242.8원에 장을 마감했다. 러시아 디폴트 우려와 이날부터 이틀간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때문에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달 24일 이후 1200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전날에는 1년10개월 만에 1240원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러시아 디폴트가 발생하면 환율도 추가 급등할 것"이라며 "1998년처럼 극단적이거나 시스템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이 높진 않으나 환율의 추가 상승은 불가피하다고 본다"고 했다. 정 연구원은 "외환시장 단기변동성은 예측 불가능하나 2020년 상반기처럼 1280원대까지 오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